신체 노출을 꺼리는 이슬람 여성이 주로 입는 수영복 '부르키니' 논란이 진정되기는커녕 위험 시비로 비화하면서 내년도 프랑스 대통령 선거 쟁점으로 번질 전망이다.

여기에다 외국의 여성주의자들은 '내가 뭘 입을지는 내가 정한다'고 말을 보태고 있어 부르키니 논쟁은 이슬람 테러 반대 정서뿐만 아니라 세속주의, 여성주의도 가세해 뒤엉킨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29일 AP, AFP 통신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부르키니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프랑스에서 내년 4∼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득표와 득실을 의식해 부르키니에 대해 잇따라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전신 수영복이라 할 부르키니를 금지한 조처는 급진 이슬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트럭 테러가 일어난 니스 인근의 칸에서 시작해 현재 30여 개 시로 확대돼 있다.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은 27일 빌뇌브-루베 시에 부르키니 금지 조처를 철회하라고 요구해 소송을 제기한 인권단체의 손을 들어줬으나 부르키니를 금지한 상당수 시장은 '우리 시에 대한 결정이 아니다'며 금지 조처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비키니와 부르키니[EPA=연합뉴스 자료사진]  

◇ 논란에 기름붓는 대권주자·정치인 입장 표명

내년도 대통령 선거에서 출마 의사를 밝힌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해변과 수영장에 부르키니가 등장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에 반대한다"며 "프랑스 공화국 영토 전역에서 금지하는 법률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부르키니를 "이슬람 정치에 도움을 주려는 도발"이라고도 주장했다.

이슬람 과격 주의자들의 잇따른 테러로 생긴 반이슬람 정서가 퍼지고 있는 만큼 '이슬람 때리기'에 편승한 모습이다.

사르코지가 꺾어야 하는 공화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유력한 알랭 쥐페 전 총리 겸 현 보르도 시장은 르피가로와 한 인터뷰에서 부르키니를 딱 꼬집어 지칭하지 않고 "지금의 긴장과 고통을 살펴볼 때 프랑스가 불에 기름을 끼얹지 않도록 조언을 잘 받아야 한다"면서 "배척하거나 낙인을 찍지 않고 모두가 화합하는 사회를 이끄는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사르코지 "부르키니 금지법 제정해 프랑스에서 퇴출해야"[AP=연합뉴스 자료사진]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은 이날 프랑스 일간 라 크루아와 한 인터뷰에서 부르키니 금지를 법제화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는 것이자, 효과도 없으며, 돌이킬 수 없는 긴장과 반목을 조장할 뿐"이라고 말했다.

부르키니 금지로 프랑스에서 따로 주목받는 해변 방문하는 수녀들.사진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풍경.[AP=연합뉴스 자료사진]

카즈뇌브 장관은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연쇄 테러 이후 상황에서 야당이 부르키니 논란을 부추겨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서 "그것은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좌파 정치인들은 부르키니가 여성에 대한 억압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이 때문에 자칫 극우파가 설정한 '부르키니 찬성=친이슬람' 프레임에 말려들까 봐 우려하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부르키니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내놓지 않고 있다.

◇ '논란 세계확산' 해외에서 여성주의자들까지 가세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의 결정이 나오기 전날 영국 런던에서는 부르키니 금지에 항의하는 30명가량이 모여 '원하는 대로 입는 해변 파티' 시위를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벌였다.

'원하는대로 입는 해변 파티' 시위 [AP=연합뉴스]

같은 날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 밖에서도 부르키니를 입은 여성들과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함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미국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사설에서 부르키니 논란으로 프랑스의 진짜 문제가 묻힐 수 있다고 우려한 데 이어 28일 자에서도 비키니와 부르키니가 여성의 복장 규제라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는 여성 억압 장치"라고 지적한 바 있다.

프랑스 유명 여배우인 이자벨 아자니는 부르키니 금지 결정을 두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나 극우 정치인에게 이익이 될 뿐이며, 우습고 위험하다"면서 "나는 금지를 통해 자유를 강요하는 데 불편함을 느낀다. 옷 때문에 여성을 해변에 가지 못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국가 대테러센터(NCTC) 소장을 지낸 마이클 라이터도 ABC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그것은 정말로 분열을 부를 수 있다고 본다"면서 "분열이야말로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이용하려고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