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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는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나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처럼 만남과 헤어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태어난 모든 것들은 언젠가 소멸하기 마련이듯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죽음이 가져오는 한 세대의 종말이 곧 지난 시절과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추억과 소중한 의미는 후대로 전승돼 새로운 만남을 이어간다. 오늘은 영화 ‘여름의 조각들’을 통해 삶의 끝에서 또 다른 시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소개하려 한다.

 파리 교외의 한적한 시골 마을. 어머니 헬렌의 일흔다섯 번째 생신을 맞이해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처럼 한데 모였다. 헬렌의 세 자녀 중 둘째와 셋째는 프랑스를 떠나 중국과 미국에 터전을 마련했다. 그렇기에 어머니 생신은 가족들이 모두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하루였다. 평생 예술을 사랑하며 미술품과 고가구를 모아 온 어머니는 큰아들을 조용히 불러 작품 정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아직 정정해 보이는 어머니의 뜻밖의 발언에 불편함을 느낀 아들은 서둘러 이야기를 마치고 생신 파티를 이어간다. 하루의 시간을 할애했던 자녀와 손주들은 잔치가 끝나기 무섭게 작별인사로 마무리했고, 홀로 남은 헬렌은 말 없이 집 안을 살펴본다.

 그리고 얼마 뒤, 뜻밖의 비보에 가족들은 다시 모인다. 건강해 보였던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세 자녀는 가슴 아팠지만, 타지에 살고 있는 둘째와 셋째의 사정을 고려해 유품 처리에 대한 논의가 시급했다. 명성 있는 작가들의 귀한 작품들이 많았던 까닭에 회의의 초점은 어머니가 사랑하던 작품들과 집을 생전 모습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3등분해 재산 분배에 들어갈 것인지가 핵심이었다. 그대로 보존하길 바라는 첫째와는 달리 프랑스 밖에서 터전을 잡은 둘째·셋째의 매각 찬성으로 견해가 갈리며 미묘한 갈등을 표출한다.

 2008년 제작된 영화 ‘여름의 기억들’은 떠난 자와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갑작스럽게 떠난 어머니와 그녀가 남긴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형제 간의 입장 차이가 기본 서사로 진행되는데, 다행히도 최근 국내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재산 분배로 형제 간 낯뜨거운 마찰을 빚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다거나 지난날의 불효를 가슴 아파하며 후회하는 비통한 정서를 보여 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담담한 듯, 일면 차갑게 보일 만큼 일부 가족들에게선 눈물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눈물이 없다고 남겨진 자식들과 떠나간 부모 사이에 애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어머니와 할머니를 기억한다. 결국 그녀가 남긴 유품은 개별 처분 대신 박물관에 기증되고, 낡은 집은 매각 전 마지막 파티를 열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난 시간을 정리한다.

 영화 ‘여름의 기억들’은 죽음이 불러온 흩어지는 기억 속에도 오래도록 추억될 사랑했던 순간들을 되새기게 한다. 또한 어머니의 유품으로 상징되는 문화유산에 대한 현대 프랑스인들의 달라진 가치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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