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 부평구 부평2동 부영로 21-81 일원에 위치한 낡은 미쓰비시 줄사택 전경. 모퉁이 곳곳에 오래된 쓰레기들이 쌓여 있다.  김덕현 기자 kdh@kihoilbo.co.kr
▲ 인천시 부평구 부평2동 부영로 21-81 일원에 위치한 낡은 미쓰비시 줄사택 전경. 모퉁이 곳곳에 오래된 쓰레기들이 쌓여 있다. 김덕현 기자 kdh@kihoilbo.co.kr
이곳의 가난은 하염없는 가난이다. 가난과 진정 사귈 수 없는 자들의 어설픈 몸짓을 일시에 죄악으로 만들어 버리는 처절한 가난이다. 문명의 손길은 멀찌감치 비켜나 있다. 루핑지붕의 ‘하꼬방’ 집들은 곧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다. 한몸 눕히기도 버거운 ‘됫박방’의 구멍 난 창문은 유리 대신 널빤지로 가려져 있다.

14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평2동 부영로 21-81 일대 ‘미쓰비시(三凌) 줄사택 촌’은 세월의 무게 앞에 그렇게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광산기계 제작회사인 히로나카상공이 지은 근로자 기숙사가 바로 이곳이다. 이어 미쓰비시중공업은 1942년 군수물자 보급 공장인 조병창을 확장 공사하면서 지금의 부평공원에 지었던 공장과 기숙사를 함께 사들였다.


2차 세계대전이 정점으로 치닫던 1940년대 초반, 한국인들은 강제 징용을 피하고자 조병창에 입사했다. 이들은 33㎡도 되지 않는 비좁은 방에서 공장으로 출퇴근하며 무기를 만들었다. 가난을 자신들의 생명 안으로 담담히 받아들인 채 가난으로써 삶의 내용을 채워 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초라한 안식처였다. 당시 공장에서 근무한 한국인은 1천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

지금까지 남은 줄사택 87채 중 사람이 사는 곳은 10여 채 30여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상당수는 무허가나 폐·공가로 방치되고 있다. 이곳은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아 LPG나 부탄가스를 사서 써야 한다. 화장실도 따로 없어 공용 화장실을 쓴다.

부평구는 국비와 지방비 등 45억 원으로 줄사택 부지 7천659㎡ 중 10% 정도를 사들여 주민 공용시설 건립과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하는 ‘새뜰마을 주거환경개선사업’을 벌이고 있다. 골목길의 도로를 새로 깔고 가스관과 하수관, 화장실 등을 새로 놓을 예정이다. 집수리도 지원하고 도시농장과 마을학교도 짓는다.

공용시설 한쪽에는 전시회 공간을 만들어 마을의 역사를 사진으로 보존할 계획이다. 텃밭으로 변한 주민 공용시설 옆 부지에는 부평2동 주민센터가 이사를 온다.

하지만 구가 매입한 땅은 전체의 25% 남짓이다. 나머지 줄사택에 사는 주민들은 "구경거리가 되기 싫다"며 그냥 이대로만 살게 해 달라고 한다. 지난해 이곳에 "전국 최초로 ‘강제징용 역사 현장 안내판’을 세우자"는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의 제안도 거절했다.

남달우 인하문화역사연구소장은 "역사 현장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옛 모습을 잃어가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역사를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길 묘안은 없는지 광복 72주년을 맞은 현대인에게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김덕현 기자 kd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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