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버스에 소녀상이 등장해 일반인들의 역사인식 변화에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어 화제다. 물론 이 소녀상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에게 성노예 생활을 감수해야 했던 불행한 운명의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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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소녀상으로 싸우는 이유는 일본에 지배당한 민족적 울분을 씻기 위해서라는 지적도 있으나 본질은 짓밟혔던 영혼을 위로하고 그 신산했던 고통을 보상받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10년 전 미국 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했을 때 왜 박수를 보냈던가? 그 휴머니즘적 울림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한일 관계는 지금 악순환에 빠져 있다. 세계사에서도 이웃한 두 나라가 식민지배·피지배였던 경우 대개 양국 관계가 험악하기 마련이다. 합리적으로 보기보다는 민족적 관점이 우선하는 것이다. 한일 간의 위안부 문제가 근래 초미의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사실상 아베 일본 총리의 일탈적 역주행으로 우리의 분노를 자극한 이유도 있겠으나, 이명박·박근혜 전 정부의 몰역사적 대응으로 갈 길을 잃은 것도 원인이다. 양국 지도자 모두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 행동하지 않은 탓인 셈이다.

 위안부라고 하면 미군 위안부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국가가 집창촌을 사실상 관리했고, 성병 검사를 하면서 강제로 격리했는가 하면 ‘미군에게 잘 해줘야 나라가 잘된다’는 식의 정신교육까지 시켰다. 일본의 위안부 문제가 시기적으로 전쟁 전의 일이라면 미군 위안부는 전후의 일이다. 우리의 소녀가 외국 군대에 짓밟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그것은 제대로 보지 못한 때문이다. 같은 인권 유린이었으나 정도 면에서 차이가 크려니와 미군 위안부 문제는 적어도 우리의 자주독립이 주어진 상황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미군이 참전하고 벌어진 사회문제였다면 일본 위안부 문제는 인류 보편 가치라는 공통 기준으로 볼 때 식민지 민중에 대한 철저하고 악랄한 범죄였다는 점이다.

 중국 역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 우리와 비슷한 체험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처럼 일본에 강력히 요구하는 점에서 비슷할지 모르나 휴머니즘의 척도로 국내외 문제를 가지런히 보면서 바깥으로 지평을 넓히는 점에서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일본에 대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일본 측에 항상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듯 해서 뭘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식이 되면 매번 우리는 일본에 의한 피해자이고 억울한 일을 당한 민족으로 남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소녀상 문제 역시 폭넓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의 경우도 그렇다. 다른 곳으로 옮겨서라도 평안한 곳에 제대로 모시는 그런 날이 오도록 인식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옮겨 모실 수도 있고 전시관 같은 걸 만들어 모시는 방법도 찾아봐야 한다. 물론 전제는 분명하다. 일본의 책임 있는 대표가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이 있어야 한다. 분명 그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겠고 갈등이 표출할 수 있겠으나 현재의 방식만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일을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 초 우리 법원은 미군 위안부 소송에서 국가에 의한 강제적 격리를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이들의 인권 침해를 조사할 법안도 국회에서 발의됐다. 내년에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게 희생당한 민간 문제를 다룰 시민법정도 열릴 예정이다.

 광복 72돌을 맞이해서 진정한 한일 관계의 우리 측 자세는 극일(克日)이지 반일(反日)이 아니다. 중국의 태도에서 배워야 한다. 한발 물러서서 진정으로 승리하는, 보편성과 객관성을 획득함으로써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일본에 우위에 서는 자신만만한 민족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제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 분 두 분 세상을 뜨시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거의 살아 계시지 못할 가능성이 몹시 크다. 결국 하루가 급한 처지가 된 것이다. 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 변화를 추구하면서 우리 스스로 전 정부의 몰역사적 대응이 다시는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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