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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예순을 1년 앞두고 운명을 달리한 미국의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는 인생 역작의 성공과 함께 길고 긴 어둠에 빠지게 된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과 논픽션 장르의 시작을 연 「인 콜드 블러드(냉혈인)」는 작가 트루먼 카포티를 대표한다. 얼핏 보기에 화려한 뉴욕의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일가족 살인사건의 실화를 다루는 두 작품은 한 작가가 집필했다고 하기엔 꽤나 다른 궤적을 그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과 인간의 고독하고 쓸쓸한 모습을 공통적으로 포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6년간 취재를 통해 논픽션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인 1966년 작 「인 콜드 블러드」로 트루먼 카포티는 부와 명예,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되지만 집필 과정 중 얻은 마음의 상처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한 명의 예술가에게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선사한 작품의 집필 과정을 그린 영화 ‘카포티’를 만나 보자.

 신문을 읽던 카포티는 짤막한 기사에 눈이 멈춘다. 캔자스주의 한 농장에서 일가족 4명이 2명의 남성에게 끔찍하게 살해됐다는 내용이었다. 작가적 영감으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페리와 딕이라는 냉혹한 살인자를 취재한다. 단돈 50달러를 위해 저질렀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그들의 행동 이면을 알고자 카포티는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형수와 대화를 나눈다.

 두 사람 중 키가 작고 섬세하며 그림에 소질이 있는 페리에게 묘한 연민을 느낀 카포티는 그와 유대감을 쌓아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 과정을 통해 저널리즘과 소설의 중간에 선 작품 「인 콜드 블러드」를 집필해 간다. 그러나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사형 집행이었다. 작품의 마침표는 이들의 죽음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었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외로운 사형수에게 유일한 친구가 돼 줬던 카포티는 그러나 사형 집행 2주 전 구명을 위해 도와 달라는 페리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한다. 이후 출간된 소설 「인 콜드 블러드」는 범죄자 및 수사관들의 섬세한 심리 포착과 더불어 치밀한 사건의 재구성을 통해 당시 사회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완성도 높게 성취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논픽션 문학의 출발점인 「인 콜드 블러드」는 작품 속 잔혹한 살인마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단돈 50달러에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차가운 사회에 대한 중의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 작품을 집필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카포티’에서는 냉혈인의 범주가 한층 더 추가된다. 바로 카포티 그 자신이다. 카포티의 냉철한 시선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동시에 사형수 페리를 대하는 그의 모습 또한 냉혈적이다. 작품 완성을 위해 도움 요청을 묵살하는 그의 태도와 누군가의 죽음으로 부와 명예를 획득한 모습 또한 소름 끼칠 만큼 잔혹하다.

 영화 ‘카포티’는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뛰어난 연기를 통해 한 인간의 이중적인 분위기를 흠잡을 데 없이 표현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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