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601010008459.jpg
영화 ‘레이디 맥베스’는 자연스레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맥베스’를 떠오르게 한다. 욕망에 사로잡혀 죄를 저지른 뒤 공포와 절망 속에서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맥베스’의 주인공은 남성이지만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러시아 문호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편의 일탈을 부추기는 희곡 ‘맥베스’의 아내를 모티브로 창작되었다. 그러나 영화 속 주인공은 희곡의 등장인물과는 다른 지점에 놓여있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힐끗힐끗 살피는 순백의 소녀는 자신의 결혼식과 앞으로의 생활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지는 콧노래의 설렘도 잠시, 팔려오듯 결혼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시켜주는 아버지 뻘의 남성은 고압적인 태도로 집안의 규칙을 전달한다. 외출은 금하고 오직 집에서만 얌전히 지낼 것을 강요 받은 캐서린은 숨막히는 상황을 견뎌나간다. 그러던 중 남편과 시아버지 모두 사업 차 집을 비우게 되고, 캐서린은 그간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한다. 몸을 옥죄는 코르셋도, 빈틈 없이 땋아 올린 머리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벌 서듯 앉아있던 그 모든 시간에서 자유로워진 그녀는 희미하게나마 기쁨을 맛본다. 그리고 하인 세바스찬과의 만남을 통해 억압되었던 욕망을 해방시킨다. 오직 자신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 통제와 권력에 대항하는 캐서린의 거침없는 행보는 급기야 살인마저 불사하게 된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인고와 순응이 전부였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레이디 맥베스’는 비범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가해지는 모든 억압과 불평등에 저항하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욕망에 충실한 여성 캐서린이 그렇다. 하지만 캐서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유를 향한 그녀의 의지를 덮어놓고 동조하기엔 걸림돌을 제거하는 그녀의 방식은 지나치게 과격한 양상을 보이며, 그렇다고 일련의 살인을 저지른 그 결과만을 두고 비난하기엔 그녀의 행복권 추구에 대한 대안이 없다.

 ‘레이디 맥베스’의 캐서린은 기존의 틀로 접근하려 들었을 때 관객을 혼란에 빠트리는 복합적이며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녀에 대한 이해는 계급과 성, 권력과 욕망에 대한 모순을 깊이 들어다 보아야 가까워진다. 힘없이 팔려온 가난한 집안의 딸이자 남성의 소유물로 존재하는 캐서린의 가련함은 그녀의 겁 없는 저항으로 통쾌한 쾌감을 안겨주지만 계급적 상하관계에서 보여주는 지배자로서의 의기양양함은 권력의 부조리를 노출한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부인은 남편을 종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한 여성이었다면 ‘레이디 맥베스’ 속 캐서린은 필요하다면 기꺼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독립적인 인물이다.

 비록 그녀가 쟁취한 최종 승리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만 이 작품은 다층적인 관계와 함께 읽을거리가 풍부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