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교육계 최초의 여성 지방부이사관.’

인천시교육청 이미옥(60·여) 감사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행정 용어도 낯선 초짜 공무원으로 시작해 여성으로서 교육공무원 최고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 이 감사관이 늘 마음에 지녔던 신념은 ‘한결 같음’이었다.

그는 오는 6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공직 생활과의 홀가분한 이별을 준비 중인 이 감사관의 표정에는 여느 때와 같이 여유와 노련함이 엿보였다.

# 새내기 교육행정직 공무원

이 감사관이 처음으로 교육행정직 공무원 일을 시작한 것은 1978년 6월이다. 당시 ‘5급을(乙)’ 공무원으로 시작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9급 공무원이었다. 평소 부모님과 별다른 문제도 겪지 않고 공부만 했던 한 소녀는 그렇게 공직 생활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에는 인천시가 경기도에 속했을 때라 경기도교육청 산하 학교에 시험을 봐서 부천 오정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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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사회생활도 잘 모르고 행정용어도 익숙하지 않은 새내기였다. 40여 년 일을 하고 배우면서 비로소 사람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웃었다. 낯선 환경에서의 업무가 힘들었을 법도 하지만 이 감사관은 공직생활을 위한 마음가짐을 이미 갖춘 ‘천생 공무원’이었다. 평소 가훈과도 같던 아버지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이 감사관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사람은 늘 정직하고 한결같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 감사관은 "항상 아버지께서 사람은 일을 대하든 다른 이들을 대하든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공직자가 갖춰야 할 윤리와 맥락을 같이하는 내용이라 이것만큼 신념으로 삼기에 적절한 말은 없었다"고 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아버지의 말씀이 지금까지 꾸준히 공직생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본다고 이 감사관은 회상한다.

이 같은 신념을 바탕으로 이 감사관은 능력을 인정받아 1992년 남부교육지원청 학사계장으로 처음 인천에 발령받았다. 1995년 인천시교육청 본청으로 들어와 각 과장과 국장을 거치며 경쟁해 지방교육공무원으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 눈 위를 걷는 마음으로

이 감사관이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했을 때, 함께 발령을 받은 동기는 총 50명이었다. 이 중 여성 동기는 겨우 13명이다. 인천시가 경기도에 속했을 때라 경기도 전역에 발령을 받다 보면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여성 동기는 거의 없었던 시기다.

이 감사관은 "경기도에서 인천시가 분리되면서 인천으로 함께 넘어온 동기는 총 8명이었는데, 중간에 명예퇴직을 하거나 명을 달리한 분도 있는 등 이제는 4명뿐"이라고 했다. 그는 "사회생활에서 경쟁을 치열하게 한 것은 아닌데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다 보니 최고 지위에 오른 여성이 됐고, 그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천시교육청에서 배출한 여성 부이사관은 이 감사관이 처음이다. 그만큼 이 감사관은 다른 여성 공무원들에게 ‘롤 모델’로 꼽히는 등 후배들의 시선을 받아 왔다. 그래서인지 이 감사관은 계장에서 과장으로, 과장에서 국장으로 새로운 직책을 맡을 때마다 ‘더 나은 리더’가 되자며 마음가짐을 바로잡았다. 남성 리더와는 다른 리더십으로 부서를 잘 이끌어 나가자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공무원은 항상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관리도 철저히 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이 감사관은 "새로운 책임이 주어질 때마다 긴장감과 설렘을 느끼기도 했지만, 후배들이 나를 보는 눈이 있으니 그 기대에 맞게 더 잘 해야겠다는 부담감도 항상 있었다"며 "눈 덮인 들판에서 처음 나 있는 발자국을 따라가게 되듯이, 내가 내딛는 발자국 하나 하나가 후배들의 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늘 노력해왔다"고 되돌아봤다.

# 익숙함과의 산뜻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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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감사관은 정년을 앞두고 가족들과의 여행계획을 세우고 있다. 환갑이기도 하고 건강하게 별 문제 없이 퇴직하는 것을 자축하는 의미다. 정년퇴직이기 때문에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감사관은 시간을 두고 ‘익숙함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중이다.

이 감사관은 "퇴직을 한다고 하니 주위 분들이 위로를 해 줘야 할지 축하를 해 줘야 할지 고민하기도 하는데, 사실 정해져 있던 퇴직이라 어느 순간 차분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퇴직 후 갑자기 생활이 달라지지는 못할 것 같고, 그동안 열심히 일하고 알차게 계획대로 지낸 것처럼 당분간은 바쁘게 지낼 것 같다고 했다. 현재 미혼인 이 감사관은 스스로 ‘공직과 결혼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만큼 공직을 떠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감사관은 교육의 울타리를 벗어나 거꾸로 사회에 나가는 느낌이라 설렘과 걱정이 앞선다.

그는 "지금까지 오로지 교육을 위해서만 일했는데 한 번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 정도로 이 직업이 참 좋았다"며 "퇴직을 하면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고 봉사도 하고 인천 교육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한동안은 바쁘게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익숙한 생활과 멀어지려는 노력을 하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산뜻한 이별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감사관은 자신처럼 정년퇴직을 앞둔 ‘58년 개띠’ 동료들에게 "뭐든 할 수 있는 세대"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막상 퇴직하는 입장이 돼 보니 몸도 정신도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일할 수 있을 정도라고 웃어보였다.

이 감사관은 "우리들은 수십 년간의 경험과 노하우가 녹아든 또 다른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를 충분히 발산할 능력과 시간을 모두 갖춘 만큼 용기를 갖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실천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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