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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뢰정형 스케이트

김윤식 전 인천시문화재단 이사장/시인

2018년 01월 10일(수) 제11면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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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전 인천시문화재단 이사장
과거 인천에 발명가가 많았다는 사실은 일제강점기 인천 사정에 정통하셨던 고일(高逸) 선생이나 신태범(愼兌範) 박사의 저서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분들조차 기록하지 않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또 하나의 발명 기록이 1933년 1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실려 있다. 이름만 들어서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지만, 불과 16세의 소년이 ‘수뢰정형(水雷艇形) 스케이트’라는 묘한 발명품을 고안해 냈다는 내용이다.

 "이 스케이트는 수뇌정(水雷艇) 모양으로 되엇는데 고무제의 주머니가 안으로도 잇고 밧갓흐로도 잇스며 꼬리에도 역시 고무로 맨든 비늘이 있어 자유로 행동하도록 구성되어 잇다 한다." 스케이트의 모양과 얼개를 설명하는 기사 원문인데 이해가 그리 쉽지 않다.

  다만, 신문에 실린 도면(圖面)을 보면, 양 발을 올려놓는 스케이트의 생김새가 수뢰로 적의 배를 공격해서 격침시키는 소형의 쾌속 함정처럼 생기기는 했다. 운전은 한 쌍의 스케이트를 "좌우로 나란히 느러노코 잡아다려다 노앗다 하는 긔계를 장치한 후 한가운데 안석(安席)을 맨들어 노은 후 그곳에서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것이다. 특기할 것은 이 스케이트가 ‘빙설(氷雪)에서나 수상(水上)에서나’ 두루 사용할 수 있는 겸용이라는 점이다.

 "이 ‘스켓트’를 물 우에서 사용할 때에는 안석에 안거나 이러서서 량편에 설치된 잡아단기엇다 노앗다 하는 것을 조종하면 물 가운데서 우산과 가튼 긔계가 닷첫다 열엿다 하면서 아모리 파란만장한 곳이라도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잇게 되엇고 어름 우에서 사용할 때에는 물속에서 개폐하는 긔계를 때이고 두 손으로 잡아다렷다 노앗다 하면 ‘스피드’를 내어 쾌주하게 되엇고 눈 우에는 물과 가튼 방법으로 역시 쾌주하게 된 리상적 발명품"이라는 설명이다. 이 스케이트에 대해서는 "작년 12월 29일" 그러니까 1932년 12월 29일에 "특허국에 특허원을 제출하얏다"고 하는데 특허가 났는지, 그래서 널리 일반에 알려져 사용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어쨌거나 스케이트의 발명자가 16세 소년이라는 점만은 흥미롭고 대견하다. 지금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소년인데, 조선인으로서는 무엇 하나 꿈꾸기조차도 어려웠던 일제강점기, 그 암흑시기에 집념과 인내로써 이 같은 독특한 발명을 해냈다는 사실은 그저 가상하고 가상할 따름이다.

 이 스케이트 발명의 주인공은 인천부 유정(柳町), 곧 지금의 중구 유동 34번지 13호에 거주하던 김용경(金龍卿)이라는 소년 전보배달부였다. 신문 기사는 "발명자 김 군은 작년에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세가 빈한하야 인천우편국 전보배달을 다니면서 매월 19원씩 밧는 박봉 중에서 집안 살림에 보태고 나머지 몇 원씩을 저축하야 가며 저축한 돈으로 발명품 실험에 사용하야 왓다 하며 그 외에도 5, 6종의 발명품이 잇고 현재 연구하는 것도 잇다고 하는 발명계에 천재적 소년"이라고 김 군을 소개한다.

 보통학교 졸업 학력으로 당시 전보 배달을 할 정도면 일본어나 한자로 쓰여 있었을 수발신자(受發信者)의 이름과 주소 같은 문자의 해득 실력이 뛰어났을 성싶고, 또 그런 머리의 소유자이니 16세 약년(弱年)의 나이로서도 여러 건의 발명이 가능했을 것이다. 앞에서도 잠시 비쳤지만, 삼단(三段)에 큰 활자로 제목을 뽑아 대서특필하다시피 한 이 기사의 뒷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아쉽다. 설명처럼 원활한 작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특허 신청이 무위로 끝난 것인지, 혹 특허는 났는데 실제 제작비용이 지나치게 높아 실용화가 안 되었는지…. 그래서 그것으로 그만 세간의 흥미도 사그라져 버리고, 그래서 고일 선생이나 신 박사 두 분의 기억 속에도 이 사건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인지….

 그렇더라도 김용경은 경제화(經濟靴)를 발명해 서민의 신발 문제를 해결한 삼성태(三盛泰) 양화점의 이성원(李盛園)과 이 경제화를 모본(模本)으로 일본 고베(神戶) 인도고 고무신발을 응용해 우리나라 최초로 고무신을 제작한 안기영(安基榮), 신발의 표준과 양산(量産)을 촉진하게 한 ‘신골(靴本)’을 창안, 제작한 주동건(朱東健), ‘사계절 제염기(製鹽機)’를 발명한 민수업(閔守業) 같은 인천의 발명가들 반열에 틀림없이 오를 만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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