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빠른 영화계에서 이견의 여지가 없이 60여 년간 인기와 명예를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 배우와 감독이라는 두 분야 모두에서 인정받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개성적이고 안정적인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으며, 자신이 연출한 영화로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 또한 두 차례 수상하는 등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다. 50년대에 영화계에 발을 들인 그는 60년대 서부영화 시리즈에서 스타덤에 오르며 고독한 무법자의 이미지를 구축했다면, 70년대에는 형사물의 고전이 된 ‘더티 해리’의 경찰을 연기했다. 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그는 삶의 무게를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이야기하는 감독으로서 확고한 필모그라피를 형성하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은 반평생이 넘는 영화인생 중 가장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장르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전쟁 드라마와 에로티시즘, 고어물과 범죄영화 사이를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이다.

남북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864년, 심각한 부상을 입은 북부 군인 존 맥버니가 버섯을 따러 숲에 온 13세의 소녀에게 발견된다. 남부지역에 거주하는 이 소녀는 비록 적군이었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군인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결국 군인 존은 소녀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 이념적 편견 없이 양심에 따라 아픈 사람을 도와준 이 고결한 행동은 그러나 비극의 씨앗이 된다.

소녀가 그를 데려간 곳은 오직 여성들만 거주하는 기숙학교였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여성만 남은 이 기숙학교에 느닷없이 찾아온 적국의 남성은 순식간에 공기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치료 후 전쟁포로로 넘기고자 했던 교장선생님의 결단이 흔들리면서 학생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매력적인 동시에 생존을 위협받는 남성은 자신에게 쏠리는 여성들의 관심을 유리한 상황으로 전환할 수 있게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미묘한 감정의 실타래는 결국 파국으로 마무리된다.

오늘 소개한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1971년도 작품으로 이는 2017년 리메이크 돼 다시 한 번 주목 받았다. 리메이크 작품은 여성의 입장에서 미세한 심리에 주목했다면, 71년 작품은 남성적 입장에서 그려졌다는 차이가 있다. 때문에 여성들간의 감정을 질투로 단순화 한 면은 있지만 이 작품은 폐쇄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극과 공포를 보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 못지않게 욕망의 충돌이 빚어낸 이기심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 이는 남북전쟁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인종 혹은 계급간의 갈등 및 폐쇄적인 사회에 대한 상징으로도 읽히며 다층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색다른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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