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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 시민사의 첫장 열어, DNA 바꿔나

2018년 01월 13일(토) 제0면
디지털뉴스부 dgnews@kihoilbo.co.kr
박종철 열사,시민사의 첫페이지 , DNA바꿔

14일이 박종철 열사 31주기이다. 당시 물고문으로 사망하게 한 가해자인 경찰이 박종철 열사 사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5백만을 돌파한 있는 영화 1987은 박종철 열사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당시 한 인사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의문사라고하는 실종내지 의문사 이런 것이 계속됐다고 밝혔다. 

박종철이 사망하자 시민들과 대학생은 거리투쟁에 나서 엄청난 물리적 탄압에 맞서며 박종철 열사를 살려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공권력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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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박종철 열사를 애도하고 있다.
경찰들은 당시 무참하게 데모대를 진압하며 박종철 열사 항의 집회를 무력으로 흩어지게 했다. 워커발로 학생들을 짓밟고 시민들에 최루탄을 쏘는 모습은 흔한 모습이었다. 이한열 열사 사건과 함께 에스컬레이트가 돼 시민들은 변화를 원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는 한열이는 세상에 없다라면서 외치면서 저항했다. 

87년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를 통해 이 나라에 학생이 아닌 시민이 태어난 것이다. 박종철 백일제가 열렸을 때도 경찰들의 탄압은 계속됐다. 박종철 열사의 어머니인 정차순 여사는 인간백정들이라며 내손으로 죽일 것이라고 분노를 표출했다. 박종철 추모 백일 추도식은 서울대 교정에서 치러졌다. 박종철 열사 어머니는 "원수를 갚아주겠다 , 종철이는 죽지 않았다"고 울부짖었다. 

당시 한 후배는 박종철 열사 사망 보도를 한 신문을 보고 오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박종철 열사는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박종철 열사의 희생으로 시민들은 자각하기 시작했다. 박종철 열사는 학생에서 시민이라는 주체를 탄생시텼다. 박종철 열사는 '시민이 쓴 역사책'의 첫페이지를 장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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