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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 자행된 ‘유대인 학살’은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비극으로 기록되고 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1994)를 비롯해 피아니스트(2002), 사울의 아들(2016)과 같은 명작들이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그린 작품들이다. 아픈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영화들이 당시를 꾸준히 재현하는 까닭은 같은 과오를 두 번 반복하지 말 것을 경고할 의무가 후대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영화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는 2017년에 개봉한 우리 영화로 잊지 말이야 할 역사의 한 순간을 언급하고 있다. 진지하고도 무거운 기억을 담아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은 상당히 신선하고 새롭다.

 시장에서 옷 수선을 하는 70대 후반의 나옥분 할머니는 오지랖이 넓기로는 금메달 감이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불법행위를 단속하고 민원을 신고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친다. 20년간 구청에 접수한 민원이 8천 건이 넘을 만큼 남다른 준법정신과 폭풍 잔소리로 무장한, 기피대상 1호 옥분 할머니가 민원활동만큼 열정을 보인 일은 바로 영어 공부이다. 진작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제외하면 피붙이라곤 미국에 살고 있는 남동생 한 명뿐인데, 동생과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 할머니는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린다.

 젊은 사람들도 쉽지 않은 영어가 노인에게 쉬울 리 없었다. 이처럼 영어 공부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회화를 유창하게 하는 구청의 9급 공무원 박민재 주임이 눈에 들온다. 다짜고짜 영어 선생님이 되어달라는 할머니의 요구로 두 사람의 수업이 시작되고,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이 싹튼다. 그리고 영어를 배우려는 할머니의 숨은 비밀이 밝혀진다.

 2017년 9월에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여러모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우선 이 작품에서 민원 왕을 맡은 노장 배우 나문희는 연기 인생 처음으로 77세의 나이에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튀거나 모난 부분 없이 전반적으로 조화롭게 완성된 작품이지만, 배우 나문희의 연기 없이는 감동과 완성도를 끌어내기 힘들다고 느껴질 만큼 진심 어린 연기의 공이 큰 작품이라 하겠다. 여기서 그녀가 연기한 옥분은 생활력도 강하고, 활기차며,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이웃 집의 오지랖 할머니인데 영화의 중반부 이후 그간 숨겨온 할머니의 과거가 밝혀진다. 바로 위안부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옥분 할머니가 영어에 매진했던 이유 중 하나는 통역의 입을 빌려 과거를 증언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직접 세상에 증언하고 밝히고 싶은 까닭에 연유했다.

 영화에서 위안부라는 소재는 대단히 조심스레 다뤄지는 이야기이다. 때문에 이를 다룬 대부분의 작품들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무겁고 비극적으로 작품을 다루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이 영화는 코미디라는 상업 장르 안에 진지한 소재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일본의 폭력적 만행을 전면에 제시하거나 감성적인 눈물만으로 채우지 않았다. 안타까운 피해자로만 묘사하던 통념에서 벗어나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 캐릭터를 잡은 과감한 접근방식은 역사 속 이야기라는 거리감을 단숨에 거둬낸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기억해야 할 역사를 무거웠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성을 통해 성공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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