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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조국수호 위해 분연히 일어선 이들에게 찬사를

호국영령들의 고장, 양평을 찾아

2018년 03월 26일(월) 제14면
안유신 기자 ays@kihoilbo.co.kr

3월은 화사한 봄의 시작을 알리지만 우리에겐 슬픈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시기다.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세계 만방에 독립 의사를 알린 3·1절, 연평해전·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희생자를 위한 ‘서해수호의 날’ 추모행사가 곳곳에서 열린다.

 기호지방에 속했던 양평은 양근과 지평이 합쳐진 곳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리적 여건으로 중앙의 소식을 신속히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19세기에 일어난 ‘지평의병’은 을미의병의 시초가 됐다. 20세기에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프랑스군의 희생이 컸던 지평리 전투가 벌어지기도 해 한국전쟁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1세기에는 양평 출신으로 천안함 46용사 중 한 명인 고(故) 이창기 준위가 있다. 천안함 피격 당시 이 준위는 승조원 명단에 없었으나 아이가 아픈 동료 간부를 대신해 스스로 천안함에 올랐다. 하지만 피격으로 배가 침몰하게 됐고, 당시 함수에 있어 생존할 가능성이 컸으나 후배들을 구하려 함미로 달려가 끝내 실종됐다.

 본보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헌신한 지평의병장들과 한국전쟁 당시 자유 수호를 위해 해외에서 참전한 지평리 전투 참가자, 서해 수호를 위해 순직한 장병들과 양평 출신인 이창기 준위를 기억하며 그 발자취를 짚어 봤다.

▲ 지평의병 지평리전투 기념관.
# 을미의병 시초 ‘지평의병’, 강원과 충북지방 의병 봉기의 도화선이 되다

 1895년 10월 일제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에 이어 단발령이 공포됐다. 이에 국가의 위기를 인식한 지평 출신의 ‘이춘영’과 ‘김백선’은 포수 400여 명을 이끌고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지평의병은 최초의 을미의병으로, 인근 강원과 충북지방 의병 봉기에 도화선이 된 대표적인 척사의병이다.

 양평 출신의 주요 의병장으로는 대표적으로 이춘영(李春永)이 꼽힌다. 그는 선배인 안승우(安承禹)의 부친 안종응(安鍾應)에게 권유받고 김백선(金百先)을 만나 의기투합했다. 뛰어난 학자였던 안종응은 아들 안승우와 이춘영에게 의병을 일으킬 것을 권하고, 포군 김백선을 의병부대에 끌어들였다. 안승우는 군대를 정비하고 친일매국 역적의 무리와 혈전을 치렀다. 선봉장으로서 단양전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 크게 승리했다.

 이승룡(李承龍)은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양근에서 의병을 모아 전술훈련을 시키고, 양근 의병장이 돼 남한산성에서 주력 부대로 활동했다. 이 밖에 손덕화(孫德化), 손용문(孫龍文), 김성화(金性化), 김재관(金在觀), 임을선(林乙善) 등이 있다.

▲ 25일 김이만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자 지평의병 지평리전투 기념관 명예관장이 견학 온 아이들에게 지평리전투 당시 참혹한 실상을 설명하고 있다.
# 지평리 전투, 한국전쟁의 판세를 바꾼 유엔군의 첫 승리

제2차 세계대전 후 광복과 더불어 좌·우익의 대립으로 남북이 분단됐다. 여기에 스탈린의 세계 공산화 전략과 마오쩌둥의 전쟁 지원 약속 등으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한국전쟁사에서 지평리 전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51년 2월 중공군 공세 당시 지평리에서 미2사단 23연대와 그에 배속된 프랑스대대가 중공군 제39군 예하 3개 사단의 집중 공격을 막아낸 방어전투다. 유엔군은 중공군 참전 이후 최초의 승리를 거둠으로써 재반격의 기틀을 갖게 됐다. 폴 프리먼 육군대령은 지평리 전투에서 몽클라르의 프랑스 대대를 포함한 미 23연대 전투단을 지휘했다. 그는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끝까지 싸워 지평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프랑스군 대대장 몽클라르 중령은 프랑스 전쟁 영웅으로, 육군 중장으로 전역 후 계급을 낮춰 중령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지평리 전투 승리의 주역이다.

#서해 수호를 위해 순직한 천안함 46용사 고(故) 이창기 준위

2010년 4월 천안함 46용사 합동 영결식에서 한 남자아이의 오른팔에는 한없이 무거워 보이는 완장이 단단히 매어져 있었다. 이 아이는 고 이창기 준위의 아들이다. 그는 당시 자랑스러운 해군의 아들이기 때문에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북방한계선(NLL)이 있는 서해의 잔잔한 파도에는 북한의 도발에 맞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들의 숭고한 혼이 잠들어 있다.

▲ 故 이창기 준위 흉상. 안유신 기자 ays@kihoilbo.co.kr
서해수호의 날은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다. 이름처럼 서해를 지켜낸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북한 연평도 포격 도발 희생자를 기리는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린다. 정부는 우리 군의 희생이 가장 컸던 천안함 피격일을 기준으로 3월 넷째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정했다.

 지난 23일 양평에서 제3회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천안함 46용사 중 한 명인 양평 출신 이창기 준위의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희생자 유족, 양평군 및 재향군인회 관계자,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이 준위의 희생을 기억하며 추모의 마음을 모았다.

 이 준위는 양평 출생이다. 2015년 4월 양평군과 재향군인회 등은 양평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해군의 영웅인 이 준위의 숭고한 뜻과 정신을 기리고자 고향인 옥천면에 흉상을 건립했다.

 양평군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2010년 4월 29일 천안함 46용사 합동 영결식 이후 대한민국의 시간은 한시도 헛되이 흐르지 않았다. 해상위령제, 천안함 용사 위령탑 제막식, 추모문화제, 고 이창기 준위 흉상 제막 등이 이어졌다"며 "이 땅의 어머니들이 더 이상 이 같은 비극으로 아픔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하나의 기억과 또 하나의 기억을 모아 용사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양평=안유신 기자 ays@kihoilbo.co.kr

 신기호 기자 skh@kihoilb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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