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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군 제적봉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땅. 이곳에서 북한까지는 불과 1.5㎞ 떨어져 있을 뿐이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먹구름 아래로 무채색의 한적한 시골길은 하염없이 내리는 비에 젖었다. 이내 탁한 빛의 바다와 해안을 따라 세워진 철조망이 나타났다. 경계 근무를 서는 초병의 모습도 보였다. 이곳이 남북 분단의 산물인 민통선임을 알렸다. 48번 국도를 타고 염하(鹽河)를 건너면 곧장 강화도 본섬이다. 다시 북쪽으로 30여 분을 내달려 해병대 검문소를 통과하면 야트막한 언덕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마을에 다다른다. 인천시 강화군 양사면이다. 남한에서 북녘 땅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마을이다. 지리적으로는 접경지역이지만 군사적으로는 접적지역으로 불린다.

여름처럼 비가 쏟아진 지난 23일 양사면을 찾았다. 양사면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 땅은 황해도 개풍군 대성면이다. 거리로 따지면 불과 1.8㎞ 떨어져 있을 뿐이다. ‘한강이 얼면 북한까지 뛰어가는 데 5분밖에 안 걸린다’는 이 마을의 우스갯소리가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판문점에서 진행되는 남북 정상회담이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북한과 마주한 양사면 주민들 또한 기대가 남다르다. 전쟁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이래 65년을 위태롭게 버텨 왔기에 이들에게는 근래 최고의 관심사가 됐다.

이곳에서 태어나 70여 년을 살아온 이경진(73)노인분회장도 남북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 회장은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 분위기가 얼마 전 북한에서 진행된 국내 가수들의 공연 이름처럼 봄이 왔다"며 "이전에 있었던 정상회담과 달리 큰 수확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돼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이 해소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이전에 이곳은 어업이 생업이었다. 전쟁 후 강화 북쪽 바다가 막히면서 더 이상 조업을 할 수 없는 공간이 됐다. 북성리 철책 근방에서 쌀 농사를 짓는 허남용(79)할아버지는 3대째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다. 허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어부였다. 유엔 관리의 중립수역이 돼 버린 지금의 한강하구에서 웅어·숭어·꽃게 등을 잡아 팔았다.

허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 말고도 이 지역에 살아오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전쟁 이후 어업에서 농업으로 생계수단을 바꿨다"며 "이번 회담을 통해 평화통일로 한 발짝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북한이 뒤통수를 친 적이 많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강화도 제적봉 평화전망대에서 휴게음식점을 운영하는 한윤동(38)씨는 이번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인 ‘종전 선언’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전 선언은 다양한 분야의 정례적인 왕래, 비핵화, 통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어렵게 만든 기회를 잘 살려 민족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숙제를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이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우제성 기자 wjs@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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