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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겸 경기시인협회 이사
지난 17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공무원 행동강령’을 두고 네티즌들은 찬반양론으로 갈리어 엇갈린 의견을 쏟아 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공무원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없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두기 위한 의례적 윈드시어 현상이라 생각하고 있다. 아울러 당분간은 휘몰아치겠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그 바람은 사그라질 것이라며 무덤덤한 표정들이다.

 다만, ‘퇴직자 사적 접촉의 신고’ 에 있어 ‘공무원은 직무관련자인 소속 기관에서 퇴직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퇴직공무원과 골프, 여행, 사행성 오락을 같이 하는 행위 등 사적 접촉을 하는 경우 소속 기관의 장에게 신고해야 한다’라는 조항에 대하여는 과거 함께 근무했던 선배 공무원과 간단한 식사와 담소를 즐길 수 있는 미풍양속을 외면한 전근대적이고 봉건적 사고의 발상이라는 반응이다.

 예컨대, 퇴근길에 얼마 전까지 함께 근무했던 선배 퇴직공무원을 시내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사전에 신고가 안 됐기 때문에 외면하고 지나쳐야 하는지, 대도시가 아닌 지역사회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매번 그냥 지나치기에는 겸연쩍어 어쩔 수 없이 저녁식사를 함께한 경우, 이 조항은 공무원들을 범법자로 만들 수 있는 독소조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분명,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라고 돼 있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져야 하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공무원 사회가 아무리 상명 하복의 특별 권력관계라고 하지만 공무원도 인간인 이상 개인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며 개별적인 소통과 만남의 공간은 사적 영역이기 때문에 이를 제재할 경우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위헌의 소지가 충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불가결한 제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거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공무원 사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정부패와 전쟁을 치러야 했고 이를 통제할 수 있는 관련 법규도 무수히 만들어 냈다.

 우선, 국가공무원법을 살펴보면 ‘공무원은 직무와 관련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례·증여 또는 향응을 주거나 받을 수 없다’라는 조문이 이에 해당되며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의 ‘공직자 행동강령’ 역시 이에 해당된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그 밖에도 국회규칙, 대법원규칙, 헌법재판소규칙,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 등 내부 규정으로 그물망처럼 촘촘히 부정부패 방지와 관련된 법규가 제도화돼 있다. 비단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공무원연금법 시행령에 의하면 재직 중의 사유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와 징계에 의해 파면된 경우, 금품 및 향응수수, 공금의 횡령·유용으로 징계 해임된 경우 등의 처분을 받았을 경우에는 평생 생계를 책임질 연금수령액이 감액되도록 돼 있다. 이것보다 더 강력한 제어장치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 밖에도 국민을 대표하는 여러 기관과 민간단체가 있다. 국회의원과 광역의원, 기초의원, 그리고 감사원을 비롯한 사정당국, 상급기관의 감사부서, 민간단체인 NGO단체, 나아가서는 언론매체 등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제도 아래서 지각이 있는 공무원이라면 어떻게 부정부패에 연루되겠는가.

 공무원은 우리나라 사회 구조상 어느 직능 단체의 구성원보다도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조직이다. 그리고 몇 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입문한 엘리트 집단으로서 명예를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들에 대한 불신과 기우의 발로에서 옥상옥의 제도를 만들어 가며 잠재적 범죄자로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을 믿고 공무담임권을 충실하게 행사하도록 격려를 해줘야 한다.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말이 있다. 이는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는 뜻이다. 즉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가 정도가 너무 지나쳐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뜻으로 위정자들은 이 고사성어를 한번쯤 생각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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