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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조선 개항을 전후해서 강화도와 영종도가 함락되자 급기야 육지에서 외적을 막아야만 했던 조선은 서울로 들어가는 지름길인 인천을 최후의 보루로 삼았다. 1879년 인천에 화도진과 부평에 연희진을 신설해서 해안 포대를 가설한 것도 그런 연유였다. 1882년 4월 일본은 인천 개항 준비를 위해 인천주재 영사 업무를 시작했고, 이해 5월 미국의 슈펠트 제독은 인천에서 수호통상 교섭을 진행시켰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조인식은 5월 20일 가지려 했지만 천막이 준비되지 않아 5월 22일로 미루어졌다. 오전 9시 30분 제물포 해안에 상륙해서 천막에 들어가 서명을 마치고, 스와트라호는 21발의 축포를 쏘았다. 조인장소는 제물포 해안으로 월미도 부근에 정박한 군함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당시 조선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한 대비책으로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을 채택했다. 중국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의 충고를 받아들여 자강을 도모하는 책략으로 삼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은 연미국(聯美國)의 구체적인 실행이었다.

 이어 1882년 6월 6일 같은 장소에서 영국과 ‘조영수호통상조약’을, 6월 30일에는 독일과 ‘조독수호통상조약’을 조인했다. 영국의 수로측량선 Flying Fish호는 7월 인천 연안의 수로측량을 하고 있었는데, 7월 23일 서울에서 일어난 임오군란으로 하나부사(花房義質)를 비롯한 일본공사 관원들이 인천으로 피신해서 7월 29일 Flying Fish호로 탈출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조영조약’의 덕택이었다. 또, 일본과 임오군란의 배상문제로 그야말로 제물포에서 ‘제물포조약’을 체결했다. 인천이 공식적으로 개항하기도 전에 이미 제물포는 각국의 각축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한국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서구 제국과 맺은 최초의 조약이었기도 하지만, 그간 일본의 간교한 술책으로 무관세로 진행되던 관세를 7년 만에 바로잡는 역할을 했다. 인천에 관세 행정을 전담하는 해관(海關)과 이를 감독하는 감리서가 설치되고 이로부터 실제적인 개항 업무가 시작됐다. 그리고 지역사회는 조약의 조인 장소에 대해서도 그간 1959년 이래 동구의 ‘화도진’으로 확정된 오류를 바로잡아, 그야말로 ‘월미도 부근에 정박한 배에서 조인장소가 보이는 곳’인 자유공원 아래 제물량로 232번길 23의 옛 세관장 사택 자리로 확정했다.

 그러나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미국 성조기와 우리의 태극기가 함께 했던 사실과 우리나라 태극기 역사에 있어서 국기로서 태극기가 공식적으로 최초 사용된 지역이 바로 인천이라는 의미 부여에 소홀했다. 이미 학계에서는 그간 일반적으로 알려진 박영효 수신사가 일본으로 가는 선상에서 만든 태극기가 ‘최초’가 아니라, 이보다 4개월 앞선 이해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시에 만든 태극기가 ‘국기’로 공식적으로 사용된 최초의 태극기로 수정, 결론 내린 상태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에서 태극기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래 1882년 미국, 영국, 독일, 1884년 이탈리아, 러시아 등 통상조약을 맺을 때마다 태극기가 사용됐다. 1893년 조선이 처음으로 참가한 시카고 만국박람회에도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도 태극기가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홍보됐고,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 선포식에도, 명성황후의 국장 행렬에도 태극기가 사용됐다. 1906년 의병들이 일어나 국권 상실에 항거할 때에도 1919년 3·1운동, 1926년 6·10만세운동 그리고 광복을 맞이해서도 태극기는 애국심의 상징이었다.

 인천은 비류의 도읍지로서 해양도시를 꿈꾼 최초의 도시였다. 전근대 역사문화도시는 인천 개항과 함께 국제도시로 변해갔고 일제강점기라는 오욕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마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진 산업 역군의 도시가 됐다. 인천은 대한민국 역사의 축소판으로 바닷길, 땅길, 철길, 하늘길이 열리면서 이제 서울 다음의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성장했다. 인천 시민의 자긍심을 위해서라도 태극기와 관련된 다양한 정책이 인천 시정(市政)에 적극 반영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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