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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소리를 들어 봐

<퍼스널 쇼퍼>

2018년 05월 18일(금) 제13면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우리는 때로 현재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을 꿈꿀 때가 있다. 상상 속의 자신은 현실의 결핍이 완전히 제거된 모습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화려하며 젊고 아름다우며 명예와 존경을 한몸에 받는 인물을 꿈꾸기도 할 것이고, 현실이 지나치게 바쁜 이들은 조용한 곳에서 평화롭게 보내는 일상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내가 아닌 타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영화에서 자주 애용되는 소재이다. 톰 행크스 주연의 ‘빅’이나 우리 영화 ‘체인지’도 이러한 소재의 작품들이다. 가까운 예로 관객들이 극장에서 2시간 동안 주인공의 이야기에 몰입되는 것도 짧은 시간이나마 타인의 삶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오늘은 이처럼 자신과 타자의 경계에 선 인물을 탐구하는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영화 ‘퍼스널 쇼퍼’는 심령 스릴러라는 외피를 둘렀지만 그 내면은 실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모린은 VIP 고객의 쇼핑을 대행해 주는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이자 죽은 자와 소통이 가능한 영매이다. 언제나 고급 브랜드 매장을 돌며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를 구매하지만 그 모든 반짝거림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유명 패션 모델인 고용주를 위해 보이지 않는 뒷자리에서 생활하는 그녀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나 자부심이 없었기에 업무 피로도가 높았다.

이는 영매로서의 역할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석 달 전에 세상을 떠난 쌍둥이 오빠와는 달리 그녀는 영혼과 소통하는 재능을 확신할 수 없었다.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은 오빠가 보내 주는 영적인 신호뿐이었는데, 불확실한 영혼의 메시지는 자신의 능력에 회의감만 줄 뿐이었다. 이처럼 스스로의 인생을 살기보다는 타인을 위해 대신 쇼핑을 하고, 죽은 영혼의 흔적을 힘겹게 쫓던 모린은 알 수 없는 상대에게서 온 의문의 문자메시지를 통해 금기시 된 욕망의 고삐를 풀게 된다.

영화 ‘퍼스널 쇼퍼’는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함께 한 두 번째 작품으로, 2016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 수상의 영예를 안겼을 뿐만 아니라 크리스틴의 필모그래피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아역 배우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녀는 판타지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통해 하이틴 스타로 발돋움한다. 그러나 연기력 논란은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그녀가 넘어야 할 과제였는데, ‘퍼스널 쇼퍼’로 그 우려는 일단락됐다.

사실 이 영화는 관객뿐 아니라 평단의 반응도 극단적으로 나뉘는 작품이다. 극은 모린의 혼란스러운 심경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분명하게 들려주고 확실하게 보여 주기보다는 모호하고 의문스럽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명쾌하지 못한 서사의 전달은 영화를 어렵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불편한 방식을 통해 현대인이 잊거나 혹은 잃은 채 살아가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모린의 직업과 성향으로 대변되는 퍼스널 쇼퍼와 영매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쫓으며 살아가는 직업인데, 이는 생계를 위해 나를 버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결국 우리는 내가 아닌 타자가 될 수 없다. 현실과 다른 나를 꿈꾸는 것은 상상일 뿐이다. 반짝이는 물질의 세계를 뒤로하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은 모린에게만 필요한 삶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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