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  석양의 붉은 노을로  유종지미(有終之美)를 ,  'ENDING으로'  

김종필 전 총리가 23일 타계했다. 김종필 전 총리 타계는 정치권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김종필 전 총리는 여백을 아는 정치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 전총리의 타계가 아쉬운 것은 최근의 살벌하고 가파른 정치권 대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강경하면서도 때로는 온건하고 양보의 미덕을 제공했던 김 전총리의 정치 궤적이 그리운 것이다. 

강경일변도나 충돌일변도의 정치가 아니라 그야말로 밀당을 하며 최고로 승화시키는 테크닉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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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필 전 총리
고인이 된 김 전총리는 서쪽에 황혼을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충청을 얻는 자가 정권을 가진다"는 말이 있었다. 대선 때는 항상 충청권의 표심이 향배를 결정짓는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최대의 변수로 까지 꼽힌 적도 있다. 1992년 대선에서 충청권 표심은 결정력을 발휘했다. 삼당 합당으로 김종필 전 총리가 김영삼 후보에게 힘을 실어 준 것이다. 

1997년에는 DJP연합이 성공했는데 이때도 김 전 총리의 선전이 돋보였다. 김종필 전 총리는 서로 살고 서로 얻어내는 상생공득(相生共得)을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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