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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편의 소설을 남기고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작가가 있다. 그리고 그 한 편의 소설은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으로 평가돼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출판 당시인 1847년에는 호평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야만적이며 비윤리적인데다가 음산하다는 혹평에 시달렸다. 그 뿐만 아니라 거칠고 악마적인 남성 캐릭터 묘사로 인해 남성 작가가 쓴 작품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소설 「제인 에어」로 자매들 중 가장 큰 인기와 명예를 누린 언니 샬롯 브론테와는 달리 대중의 외면과 악평을 들어야 했던 에밀리는 소설 출간 1년 뒤에 결핵으로 사망한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재조명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돋보이는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은 ‘폭풍의 언덕’을 영화화한 작품 중 2011년 개봉한 안드리아 아놀드 감독의 영화를 소개한다.

 영국 요크셔 지방의 황량한 언덕 위에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라는 낡은 저택이 외따로 서 있다. 집안의 가장인 언쇼는 폭풍이 몰아치던 어느 밤, 고아 소년 한 명을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그에게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친자식처럼 대한다. 그러나 이미 그에게는 힌들리와 캐서린이라는 자녀가 있었다. 비슷한 또래인 캐서린과는 금세 친해진 반면 힌들리는 아버지 언쇼 몰래 히스클리프를 괴롭히고 미워했다. 이후 아버지가 죽자 집안의 가장이 된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짐승처럼 학대한다.

 히스클리프가 학대 속에서도 워더링 하이츠를 떠나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는 사랑하는 캐서린 때문이었다. 그러나 캐서린이 인근 대저택의 아들인 에드가와 결혼을 약속하자 히스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를 떠난다. 그리고 어른이 돼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첫사랑인 캐서린을 되찾으려 한다.

 유명 소설이 원작인 만큼 영화 ‘폭풍의 언덕’의 줄거리는 변함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전에 영상화된 작품과는 구별되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선 히스클리프가 흑인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소설에서는 인종을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까무잡잡한 피부의 이국적인 외모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를 이 영화에서는 흑인 주인공으로 설정해 이야기를 끌고 간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 만큼 인종 차이로 인한 갈등이 히스클리프의 비극을 더욱 극대화한다. 두 번째 특이사항은 히스클리프의 관점으로 작품을 밀도 있게 압축한 데 있다.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원작의 구조와는 달리 이 영화는 히스클리프의 눈과, 귀로 보여지고 들려진다.

그리고 성인 시절보다 아동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소년과 소녀가 처음으로 느끼는 생생하고도 생경한 첫사랑의 감정들을 거친 자연의 풍광 속에서 정제하지 않고 전달한다. 이는 예민한 오감으로 사랑을 몸에 새긴 어린 화자를 통해 첫사랑의 열병을 보다 가깝게 체험하게 한다. 아놀드의 영화 ‘폭풍의 언덕’은 열병의 발화점인 사랑의 시작에 닿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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