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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뚫고 나오는 열정 없이는 평화통일을 이룰 수 없지"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인터뷰

2018년 10월 22일(월) 제13면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높은 빌딩이 있다고, 비싼 아파트가 있다고 좋은 도시가 아냐. 사람이 살아야지. 그것도 좋은 사람이. 그래서 도시는 생명체야.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며 끊임없이 역사를 만들어 가기 때문이지."

 지용택(81)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의 말이다. 지난 18일 중구 신흥동에 위치한 새얼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도시·인물·역사’를 강조했다. 그리고 그 연장 선상에는 죽산 조봉암 선생의 석상 건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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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은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죽산 선생은 강화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을 했다. 1919년 3월 18일 강화 만세시위에 참가했고, 4월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혐의로 강화경찰서에 구속됐다가 같은 해 9월 30일 서대문 형무소를 출소했다. 1920년 5월 26일 대동단 사건으로 평양경찰서에 연행돼 2주간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21년 11월 29일 박열·김약수 등과 아나키스트 모임 흑도회를 조직했고, 1925년 4월 17일 제1차 조선공산당을 결성했다. 1932년 9월 28일 상하이에서 체포된 뒤 12월 고국으로 압송됐다. 이후 1933년 12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뒤 1939년 7월 가석방됐다. 다시 1945년 1월 일본군에 의해 예비구금령으로 구속됐으나 8월 15일 해방으로 석방된 뒤 같은 달 18일 건국준비위원회 인천지부를 조직했다. 이후 제헌 국회의원과 초대 농림부 장관, 두 차례에 걸쳐 국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죽산 선생은 이승만 독재 정권에 맞서 1952년 8월 5일 2대 대통령 선거와 1956년 5월 15일 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는 1956년 11월 10일 진보당을 창당한 뒤 이승만 정권에 의해 ‘사법 살인’을 당했다.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진보당을 결성하고 간첩행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1959년 2월 27일 사형선고를 내렸고, 같은 해 7월 30일 재심 기각결정을 통보한 지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향년 61세. 그러나 결국 죽산은 2011년 1월 20일 대법원 전원합의부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렇게 죽산 선생을 소개한 지 이사장은 "대법원이 똑같은 대법원인데, 한 번은 사형을, 한 번은 무죄를 선고했어. 참…. 죽산 조봉암 선생은 평생을 독립운동과 평화통일운동을 하신 분이야. 조선공산당을 만든 사람 중 하나지만 결국 공산당과 결별하고 이승만 정권에서 초대 농림부 장관을 하며 토지개혁을 했지. 당시 서민들이 땅을 가져본 적이 있었겠느냐고. 토지개혁의 기초를 단단히 쌓아 놓았던 덕에 한국전쟁 당시 농민들이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았던 거지. 죽산 선생의 토지개혁은 공산화되지 않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거야"며 길게 죽산 선생의 뜻을 나열했다.

 새얼문화재단은 죽산의 무죄 판결이 내려진 뒤 동상 건립기금 모금에 나섰다. 2011년 모금운동을 시작해 올해 9월 현재 목표액 8억 원 중 7억3천300만 원을 모았다. 참여 인원은 5천272명이다. 당초 새얼문화재단은 죽산 선생의 동상 건립을 추진해 왔지만 석상으로 바꿨다. 또 죽산 선생의 석상과 함께 건립비용 모금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을 새긴 동판도 함께 세울 예정이다. 건립 규모나 장소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죽산 선생의 탄생 120년인 내년에 석상을 세우려고. 처음에는 동상을 만들려고 했는데 석상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미국 워싱턴에 10m가 넘는 마틴 루터 킹 석상이 있는데 굉장히 웅장해. 그렇게까지 크게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3∼5m 정도 크기로 해서 만들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있지. 석상으로 만드는 이유는 죽산 선생의 살아 생전 강고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야. 돌을 뚫고 나가는 열정을 갖고 있지 않으면 평화통일을 말할 수가 없어. 죽산 선생은 당시 죽을 것을 각오하고 평화 통일을 주장한거야. 곧 작품선정위원회를 꾸려 작가 추천을 받고 작은 조형물을 만들어오라고 해서 작가를 결정할거야. 장소는 아직 연구 중에 있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세우려고 하고 있고 날짜는 아직이야. 누구는 돌아가신 날로 하자고 하고, 누구는 태어난 날로 하자는 의견도 있어.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묶이고 싶지 않아."

 지 이사장은 인천은 통일과 화합을 상징하는 도시라고 말한다. 죽산 선생이 최초로 평화 통일을 정치적 기치로 들고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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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서북쪽으로 막혀 있지만 통일이 되면 한반도의 중심 도시가 될 거야. 더 이상 서울이나 경기의 배후도시가 아니라 앞으로는 서울이나 경기가 인천의 배후도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특히 남북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인천은 더욱 번성할거야. 당장 평화 통일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교류를 시작하면서 기반을 닦아 나가야지. 그리고 그 기반을 닦고 평화 통일을 준비하는 중심에 죽산 조봉암 선생이 우뚝 서 있을 거야." 그는 이어 인천에서 자라나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죽산 선생의 석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지역에도 이렇게 훌륭한 어른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리는 것이 필요해. 인천사람이라는 것에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인천사람인 것을 자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야. 얼마 전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살고 망하면 인천 산다)’이라는 말 때문에 소란스러웠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 망해서 인천 오면 어떠냐. 망해서 와도 인천에서 성공하면 된다. 실패해서 인천에 왔는데 인천에서 다시 일어나면 된다. 인천에는 인천사람도 호남·영남·충청·강원 그리고 이북 5도민 등등이 모여 살고 있어. 외지 사람이지만 인천에 와서 살면 인천사람이야. 누구나 인천에 와서 뿌리를 내리고 살면 인천사람이 되고, 이들이 서로 인천사람인 것을 자랑할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살면 되는 거야." 지 이사장은 끝으로 후배들에게 물려줄 정신이 있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물려줄 정신은 ‘해불양수(海不讓水)’와 ‘우공이산(愚公移山)’이야. 이 두 가지 정신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면 돼." ‘해불양수’는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거대한 대양을 이룬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을 차별 않고 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공이산’은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이렇듯 지 이사장은 인천과 죽산 선생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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