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봄
89분 / 음악다큐멘터리 /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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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승리의 함성이 사그라진 1991년의 봄, 국가의 불의에 저항하던 11명의 청춘들이 스러진다. 국가는 27살 청년 강기훈을 배후로 지목하지만 24년이 흐른 2015년의 봄, 강기훈은 최종 무죄가 된다.

 영화 ‘1991, 봄’은 1991년 4월 26일부터 5월 25일까지 강경대 열사로 시작해 김귀정 열사까지 국가의 불의에 저항한 11명의 청춘들과 당시 유서 대필, 자살 방조라는 사법사상 유일무이의 죄명으로 낙인 찍힌 스물일곱 살 청년 강기훈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사건은 1991년 5월 8일 당시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이 노태우 정권의 폭압에 항거해 분신자살하자 검찰이 김기설의 동료인 강기훈을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 혐의로 기소하고 처벌한 사건이다. 강기훈은 징역 3년 만기 출소 후 재심 끝에 2015년 5월, 대법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 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사건으로 불렸다. 1894년 프랑스의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 또한 독일에 군사기밀을 넘긴 죄로 고소당했으며, 기밀이 적힌 문서와 필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영화는 24년 뒤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을 때 말기암의 몸이었던 강기훈의 기타 연주로 시작한다. ‘1991, 봄’은 강기훈이 연주하는 동명의 기타 연주곡의 제목으로, 흘러가며 세상이 등지고 우리가 잊은 1991년 봄의 찬란했던 삶과 죽음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아멜리아의 유서’, ‘성당’, ‘카바티나’ 등 강기훈 씨가 연주한 곡들의 제목을 따라 8개 장으로 구성돼 있고, 각 장은 그가 왜 저 곡을 선택했을까 하는 물음에 감독이 내놓은 답과도 같다.

 그래서 ‘1991, 봄’에서 기타 연주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장이 시작될 때마다 이야기를 안내하고 마지막에는 풀어 놓은 이야기들을 모두 끌어안는 역할을 한다. 음악의 힘으로 그 시절을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울리는 것이다.

 ‘1991, 봄’은 한 청년의 죽음을 왜곡하고 그 친구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는 데 가담했던 이들이 처벌은커녕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또다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사법정의가 꼭 이뤄져야 함을 전한다.

 여느 겨울보다 혹독했던 봄을 견디고 피어난 이름 없는 꽃들의 아름답고 눈물겨운 삶의 이야기 ‘1991, 봄’은 이달 31일 개봉한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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