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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운 객원논설위원
세월의 흔적을 오롯이 지켜오고 간직한 곳을 노포(老鋪)라 한다. 50년 이상을 그 자리에서 그 맛을 지켜온 가게, 또한 노포라고 부른다. 누군가에는 추억이고 누군가에는 어머니의 맛이고 누군가에는 고향의 맛이 노포에서 느끼는 맛이다. 최근에는 지자체마다 역사와 문화에 초점을 두면서 ‘100년 가게’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100년 가게, 그 맛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천에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에서 2년 동안 발품을 파는 노력과 열정이 합해져서 ‘오래된 가게, 인천 노포(老鋪)전’을 열고 있다. 50년 이상 업종을 바꾸지 않고 대를 이어온 가게를 소개하는 전시회다. 인천일보의 고(故) 김홍전 기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 인천도시역사관 학예사들의 열정과 노력을, 멋진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인천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어디를 구경하고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 그들을 위해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설렁탕집, 해장국집, 양복점, 자전거 수리점, 필름카메라 인화점, 이발소 등 16개 가게의 이야기와 역사가 소개된다. 사람들의 선호에 따라 맛집과 멋집은 바뀔 수 있지만, 한 업종에서 50년 이상의 전통은 바뀌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그 집의 역사는 그 음식의 맛에 어떠한 조미료보다 더한 맛을 낼 수 있다. 인천의 멋집과 맛집을 알리는 정보는 차고도 넘쳐난다. 개인 블로그와 SNS, 지자체 정보, 관광공사 정보 등 진위를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연령이나 성별, 개개인의 선호에 따라 맛과 멋은 변해왔지만 한 업종에서 50년 이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의 세대에서 자식에게, 다시 그 자식에게 넘겨야만 노포가 유지되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그 지역의 유명 인사나 원로들이 다니는 집을 신문 기사에서 다루고 그 기사를 보고 사람들이 찾게 되고, 그 맛에 감동을 받고 다시 자녀의 손을 잡고 찾아올 때 100년 가게가 이어지는 것이다. 냉면으로 유명한 서울의 00면옥은 재개발지역에서 제외하기로 한 기사가 소개됐다. 그 전통을 이어가는 100년 가게를 만들기 위해서란다. 한 번쯤 정책 입안자들이 고민해볼 대목이다. 인천에도 유명한 집들은 특별한 레시피보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부모님이 하던 방식으로 음식을 만든다 한다. 어느 노포는 허름한 원도심에서 명맥을 유지하기도 하고, 주차장이 없어서 가기 불편한 곳도 있다. 자부심과 긍지만으로 가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에게 자부심이라도 주는 정책이 필요하고 그 역할은 지자체가 맡아서 해야 할 일이다. 정책 지원이나 보이지 않는 칭찬일지라도 가끔은 다독이는 정책 지원도 필요하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인천도시역사관 학예사분들도 그러한 취지에서 이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한다. 맛이 없거나 서비스정신이 없다면 곧바로 등을 돌리는 것이 요즘의 손님이다. 개인의 정보망을 통해서 맛집과 멋집을 냉정하게 평가한다. 그들에게 노포라는 이름만이 아니라 그 집의 역사와 가업을 잇는 스토리텔링까지 소개하는 것이 노포가 할 일이다. 도시의 역사성은 그 지역의 자긍심과 통한다. 역사성이 문화이고, 사라진 학생 골목의 만둣집과 찐빵집, 기독병원에서 율목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있던 인천 도넛 등은 어느 연령층에게는 향수일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지지만 50년 이상을 이어가는 업종에 관심을 두는 정책이 뿌리산업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인천의 산업유산 정책을 이야기하면서, 헐고 부수면서 그것을 다시 복원하는 정책은 혈세 낭비다. 원도심의 골목길을 거닐면서 추억을 소환하는 먹거리를 소개한다면 좋은 관광 요소가 될 것이다. 노포를 위해서는 경영철학이 필요하고, 손님들과 약속을 지키는 집이어야 하며, 정확히 소개하는 정보가 노포의 조건이다. 돈이 된다고 점포수를 늘리는 사업에만 몰두한다면 노포가 될 수 없다. 자녀들의 손을 잡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집이 주변에 있다면, 인천을 찾아온 지인에게 인천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인천의 노포(老鋪)로 안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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