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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모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많은 간호사들이 병원 취업 초기에 순조롭게 적응하지 못하고 이직을 한다. 단순하게 적응을 하지 못해서 나오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의 왕따 문화 때문에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졸업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소식을 들으면 매우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기쁨을 느낀다. 불분명한 자신의 미래가 취업이라는 사건 하나로 분명해지는 순간이라서 큰 걱정을 덜게 되는 생애 큰 사건이다. 졸업생 입장에서는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첫발을 내딛게 되는 순간이라서 잘 해나갈 수 있을지가 염려스러운데 확실하게 염려를 해야 하는 상황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니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심정일 것이다.

어디에 가나 처음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금 못나게 보이는 순간이 있으며 이런 순간을 비웃고 우습게 보는 몇 명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간의 속성 때문에 조직에 적응하기까지 견뎌야 하는 순간들이 있는 것이고 이런 순간이 지나가면 숙련된 직장인이 돼 있어 어리숙한 면으로는 왕따시키기가 어려워지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반적으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이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금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어느 조직이나 있을 법한 정도를 넘어가서 정도가 심한 왕따 문화로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가끔씩 졸업생들이 찾아와서 애로사항을 상담하는 경우가 있다. 졸업생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이라서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는 어렵지만 학교 생활을 성실하게 잘하고 솔선수범하던 학생도 병원에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묘사한다. 보통은 한두 명이 유독 심하게 괴롭히고 나머지 주변인들은 이런 부당한 상황을 침묵으로 인정한다.

이런 왕따 문화는 도대체 왜 형성되는 것이고 왜 심해지는 것인가? 인간은 불안전해서 상황에 쉽게 동조되고 유합한다는 속설을 실험으로 증명한 사례가 있다. 밀그램의 전기자극으로 권위에 복종하는 실험과 짐바르도의 감옥실험이다. 밀그램은 실험대상자들에게 학생이 제출된 문제에 오답을 적었을 때 전기충격을 주라고 지시했으며 최고 수위로 올리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도 주었는데 대다수의 대상자들이 전기충격을 최고수위까지 올리라는 지시에 이행하는 것을 보고 연구진들도 놀랐다는 것이다. 이 실험디자인을 계획할 때에는 실험대상자들이 전기 충격을 최고수위로 올리기 전에 포기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와는 달리 거의 모든 대상자들이 지시에 착실히 이행해 지시하는 권위에 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나아간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실험이 짐바르도의 감옥 실험이다. 실험대상자들은 학생이었는데 학생을 교도관 집단과 죄인집단으로 나눠서 역할을 하게 했다. 죄수 역할을 하는 학생은 처음 체포되는 것부터 감옥에 구금돼 생활하는 것까지 실제와 마찬가지로 실행하게 했는데 두 집단이 실제 지시한 역할보다도 더 역할에 심취해 교도관 역할을 하는 학생들이 죄수들을 잔인하게 취급하는 것이 관찰되고 실험은 조기 종료됐다. 이 실험 역시 현재까지 여러 가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두 가지는 실험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실제로 이런 상황들이 일어난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독일 히틀러 시절의 홀로코스트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인간이 상황에 아무런 의심이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굴복하는 속성은 어느 사회에서나 관찰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극악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유태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은 우리들 평범한 속에 있다고 했다. 부당한 일, 부당한 명령, 행위에 의심을 하지 않고 문제 제기하지 않고 침묵하고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악이라고 했다. 우리 생활 속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악의 속성이기 때문에 이런 속성이 커지지 않으려면 모든 사람들이 함께 문제 제기하고 상황을 악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인간의 약한 속성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주변에 우리 인간을 병들게 하는 평범한 악의 왕따 문화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소리 내어 주는 것이 평범함 속에 있는 악을 물리치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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