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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웅 변호사
몇 년 전부터 ‘혐오’라는 단어가 인터넷과 언론에 자주 등장하더니 이제는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 것 같다. ‘여성혐오’(여혐)와 ‘남성혐오’(남혐)로 시작해 ‘충’(蟲)자를 사용해 나이가 많으면 ‘틀딱충’, 어리면 ‘급식충’, 아이를 키운다고 ‘맘충’ 등 혐오를 표현하는 신조어들도 많아 졌다. 최근에는 혐오가 조직화되는 경향이 보이고 있으며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졌다.

 사실 혐오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며, 어찌 보면 인류의 역사와도 함께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역사적으로 혐오는 동질성이나 순수성을 훼손한다고 간주된 사회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발현됐다. 전통적으로 소수 인종이나 소수 종교, 성적소수자에 대한 박해와 폭력이 혐오의 양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종이나 종교적 혐오는 비교적 적었지만, ‘지역감정’이나 ‘이념대립’ 에 사회적 혐오가 스며들어 있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성차별이나 세대, 다민족, 난민 등 과거 경험하지 못했던 사회적 과제가 등장하면서 혐오의 양상도 다양화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혐오 현상은 다른 것에 대해 거부하고 싫어하는 감정에 기반하고 있다. 혐오의 감정은 대부분 논리적인 근거나 합리적 배경이 없이 나타난다. 동질성이나 순수성, 본연성 등 모호하고 추상적인 가치에 기반하고 있을 뿐이다. 합리적 배경 없이 감정의 발현에 불과한 혐오는 증오와 폭력을 가지고 올 뿐 발전적 결과를 갖고 오지 못한다. 이 때문에 성숙한 사회라면 혐오를 표현하고 동조하는 것이 금기시 돼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과 일탈을 놀이로 받아들이는 특유의 문화가 잠재된 혐오 표현을 자유롭게 하면서 논란과 확대 재생산, 반작용 등의 양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혐오와는 다르게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계층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익의 충돌은 당연히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과제이다. 예를 들어 급여를 받는 사람과 급여를 줘야 하는 사람, 중소기업과 대기업,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도시 생활자와 농촌 생활자 사이의 갈등은 이미 예정된 것이다. 다양한 갈등을 대변하고 조직화해 대안을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상의 정치활동이다. 갈등의 결과는 협상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이다.

 올바른 정치는 갈등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러나 나쁜 정치는 혐오를 이용하고 권력을 얻고 통치한다. 혐오가 정치에 이용된 대표적인 역사가 나치 독일의 집권과 유태인 학살이다. 나치는 당시 독일 사회의 유태인이나 장애인을 향한 반감을 이용해 이들을 ‘사회를 좀 먹는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권력을 획득했고, 이후 그 비극적 결말은 주지하는 바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독재정권이 지역감정과 이념대립에 혐오를 부추겨 정치적으로 이용해온 바 있다. 정치적 비전이 없는 정치인들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들을 혐오의 탈을 씌워 사회 혼란만을 야기시키고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도 한다. 혐오의 정서는 정치에 의해서 이용되기 쉽고, 나쁜 정치인은 항상 혐오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여과되지 않은 혐오의 목소리가 나오고 일부 조직화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타고 이미 낡은 것으로 여겨졌던 이념 대립이나 지역감정도 살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기회주의적 일부 정치인들은 노골적으로 혐오를 부추기거나 선동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일부 정치인들이 한 5·18민주항쟁 관련 망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일부 보수적 유권자 사이에 남아 있는 이념적·지역적 혐오를 선동해 자신의 눈앞 이익만을 쫓으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혐오의 정치는 증오와 폭력을 잉태할 뿐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 그 힘이 커질수록 극우나 극좌 같은 왜곡된 정치 집단을 만들어낼 뿐이다. 정치인 중 옥석을 가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누가 혐오의 정치를 만드는지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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