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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시조시인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시대를 초월하는 잠언이라 할 만하다. 예나 이제나 인사 문제는 늘 시사의 관심거리다. 각 나라의 대통령으로부터 중소기업 평직원에 이르기까지 이에 대상이 안 되는 사람이 없다. ‘인사’는 여느 조직에서 사람의 채용, 배치, 평가, 보상 등 여러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선출·임면·기용의 뜻으로 좁혀본다. 바람직한 인사는 흔히 적재적소 배치라고 일컬어진다. 그 일을 신나게 잘하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힌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한데, 현실은 그러지 못해 세사에 상당히 회자된다. 자유민주국가의 대통령을 국민 투표로 뽑아놓고도 말이 많은데, 국회의원이나 다른 하위직 선출직이야 더할 나위가 없지 않나 싶다. 장기간 내지 종신 세습되는 전제국가의 통치자는 거론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제 한 국가 정부 조직의 관료 임면에 대해 예를 들어 살펴본다.

 "군지인사"(君志人事)-이는 내가 80년대부터 낙관으로 새겨 서화에 두인(頭印)으로 써온 말이다. 만나는 사람에게 나름 귀히 쓰곤 했다. 객기였지만 당시 「육도삼략」이라는 병법서를 보고, 「육도(六韜)」의 문장 첫 구절부터 빠져 들었던 것 같다. ‘군자는 그 뜻을 얻어 즐겁고, 소인배는 그 일 자체를 얻어 즐겁다’(君子樂得其志 小人樂得其事)라는 문구를 줄여 쓴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 중원대륙 은(殷)나라 말엽, 주나라 문왕과 강태공이 처음 만나 나눈 대화의 일부다. 당시 위수에서 70여 성상이 되도록 낚시하며 기다리던 태공망에게 문왕이 낚시가 즐거우냐고 물었을 때, 이는 그의 답변이었다. 부처도 노자도 소크라테스도 태어나기 몇 백 년 전의 일이다.

 폭군의 악정이 극에 달하던 은나라 말기, 억압받던 소국들 중에서 주(周)나라의 문왕은 맏아들을 육탕질 당하는 처지에서 강태공과 만났다. 난세에 조우한 두 인물. 추구하는 뜻이 올발랐기에 두 사람은 서로 죽이 잘 맞는 군자들이라 할 만하다. 강태공을 스승으로 모신 문왕은 그의 도움으로 아들 무왕으로 하여금 은의 폭군을 무찌르게 했다. 이렇게 세워진 주나라는 그 후 수백 년간 유지됐다. 이 사례의 경우는 훌륭한 임명권자가 훌륭한 피임명자를 잘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육도」는 비록 오래된 병법서로서 전시나 난국에 활용된 것이라 해도, 오늘날 초연결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재물을 맡겨 정직성을 본다는 따위의 ‘인물 분별 8징법’은 지금도 인사행정에 활용될 수 있다. 또한, 황석공이 전한 태공병법서 「삼략(三略)」에는 ‘구치’(舊齒)와 ‘암혈’(巖穴)을 초빙해야 일이 잘되고 실익이 있다고 돼 있다. 여기서 구치는 ‘나이 들고 덕이 높은 사람’(기덕)을, 암혈은 ‘숨은 인물’(은사)을 말한다.

 장수시대인 이즈음은 노년층이라도 건강하고 경륜 높은 사람이 있고, 개방사회라 해도 숨은 인물이 있다. 우리나라 실정을 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인사가 있어왔지만 심할 때가 문제다. 전체주의는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는 선전을 휘두른다고 한다. ‘거짓도 천 번 말하면 진실이 된다’고 나치 독일의 괴벨스는 말했다. 요즈음 남북한 실상을 들여다보면 자명해진다. 북한의 가차 없는 숙청설이나 한국 여·야당의 선전전이 그러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달포 전에는 청장년·자영업자 관련 구설에 오른 청와대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즉시 해임됐다. 집권 3년차에는 코드인사를 끝내야 한다고 비판한 문희상 국회의장의 견해도 있었다.

 요즘 100세 연배분들의 생업에 종사하는 사례가 낯설지 않다. 까마득한 옛날, 강태공은 무려 일흔에 관직에 기용돼 건국에 큰 역할을 했다. 대기만성은 바로 이때 쓰는 말 같다. 그가 동이족이라고 해 왠지 더 살갑게 느껴진다. 지금은 고도의 정신문명이 도래하는 시대요, 국가간, 기업간 총성 없는 전쟁의 시대다. 병법서 「육도삼략」을 법고창신으로 삼아 적용해도 될 법한 시점이다. 가급적 규제를 없애야 창조적 인물이 나오기 쉽다. 노년층도 청장년층도 두루 잘 살아야 한다. 강태공은 큰 인물이다. 각계 인재가 넘쳐나는 이 시대, 진정 올바른 인물의 탄생을 갈구한다. 단시조로 그려본다.

 # 태공 낚시
 
 죽어도 아니 죽어
 3천 년이 지나도록
 
 세월 강에 드리운 채
 기다려온 입때까지
 
 지어(志魚)는
 소식이 없고
 낚싯대만 자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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