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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원일 인천부평으뜸포럼 대표
"체리 씨앗은 아무 문제없이 100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각각의 씨앗이 정확히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그 씨앗만이 안다"라고 식물학자 호프 자런이 기술했다.

 씨앗이 웅크린 채 기다린 100년의 시간은 어둠을 자궁으로 삼았다지만, 적당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이 필요했음은 당연하다.

 1919년 3월 1일에 천고에 빛날 순국혼이 앞장서고 비폭력으로 저항한 조선의 남녀노소 심지어 소복차림에 수건으로 허리를 둘러맨 기생단까지, 우리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천지가 진동할 함성을 지르며 죽음을 불사하고 분연히 일어섰다.

 그 3·1 독립만세운동이 꼭 100년이 되는 오늘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 주저앉아 통곡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 갖혀 있는 외교적 시야, 압축 성장이 낳은 사회 시스템, 시장경제의 가치 미공유와 R(Recession, 경기침체)의 공포, 초과세수로 재정 퍼붓기, 취업 빙하기 등등 헤아리기가 어렵다.

 물론 우리는 100년이 되기 전인 1945년 8월에 선열의 붉은 피와 땀으로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했다. 그리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바로 외세에 의한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을 겪은 것이다. 그 뒤 인권을 뒤로 한 채 산업화를 추진하고 피의 대가를 치르며 민주화를 성취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아홉 차례의 개헌을 이뤄내기까지 기득권 수구정치,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 지역감정, 세대 간의 갈등 속에서 엄청난 국가적 고통을 겪으며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꽃을 피우기까지 필요한 누적온기의 총량(가온양)이 아직 부족하단 말인가?

 바람이 불면 낙엽이 진다. 하지만 풍파로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하면 열매가 여문다. 이제 구름을 바라보며 희망과 소망을 품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굳게 참고 버티어 마음이 흔들리거나 뜻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잘못된 정의는 삐뚤어진 신념을 낳는다. 두려움을 버리고 현실과 시대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봐야만 한다.

 눈이 어두워지면 사물과 멀어지고 귀가 어두우면 사람과 멀어진다. 민본과 실천이 필요한 때다.

 비극은 남을 속이려는 거짓된 언어를,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정의로운 목표를 위해 남용하는 데서 온다. 개인의 수양을 넘어 국가와 사회,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지식인이 필요하다.

 또한 갈망과 우직함을 키워낼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는 민심을 따르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믿지만, 공화국은 제도에 의한 통치를 뜻하기 때문이다. 가끔 법보다 국민의 분노를 중요시하는 경우가 있었다. 소용돌이가 모든 걸 빨아들이는 듯하지만, 정작 그 중심은 텅 비어 있다.

 올바른 부모의 권위는 어린 자식에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교육하고 훈련이 가능하게 한다. 또한 엄마가 어린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완벽한 영양식인 모유는 아이의 건강과 두뇌 발달 등에 절대적인 도움이 된다.

 국민 모두가 신뢰하는 국가의 권위 또한 국민이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며 따르고 분노를 억제해 법질서 아래 놓이게 한다.

 모국이라고 할 때 국가는 국민의 안녕과 예측 가능한 삶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이제는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주인으로서, 왕처럼 명령하고 노예처럼 일하는 백성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치우침 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랑스러운 대한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대를 이어 살고 싶은 조국이라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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