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왼쪽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법치의 그림자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2019년 05월 01일(수) 제11면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jpg
▲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신상필벌은 혼란했던 저 먼 춘추전국시대에 법가가 채택했던 강력한 집단 질서 유지의 원리였다. 이 원리는 인간의 양심과 도덕성을 의심하고 자율성과 자발성을 불신한다. 그래서 억압과 타율적 강제가 비인간적이듯이 이 교설은 지나치게 각박하다는 혐의를 짙게 받는다.

 춘추전국시대 열국을 통일했던 진나라는 열국의 중심국도 아니고 패권국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그런 북서 변방국에 지나지 않았던 진의 중국 통일에는 그 바탕에 상앙의 부국강병책이 자리하고 있었다. 후일 법가라고 지칭되는 그 부국강병책은 진나라가 강력한 법치로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가장 유효한 방식이었다. 상앙 시대에 관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든 정해진 법규에 저촉되면 법대로 엄격하게 처벌했다. 그는 부국강병을 위해 상벌을 분명히 하고 엄벌로써 백성을 위협했다. 이에 따라 진나라는 천하 강국이 되었지만 세상이 바뀌자 결국 상앙은 가혹한 법에 분노했던 백성들로부터 버림받고 수레에 몸이 찢기는 죽임을 당했다.

 사회는 가정의 인정과 친목만으로 개인 간의 관계를 관리하고 갈등을 제어하기 힘든 격전장이다. 그래서 신상필벌은 각자의 관심과 이해가 뒤섞인 사회에서 그 충돌을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효율적이고 즉각적인 방식이다. 어쩌면 질서에 대한 개인의 적극적인 협조와 자발적인 희생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절에는 차갑고 냉혹한 법가가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규율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대 입헌 국가에서의 법치는 법에 있으면 그 죄를 처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법적 권력 행사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엄정하게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반드시 형벌에 처할 필요성이 있을 때 공익의 대변자가 나서서 드러난 범죄만을 처벌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따라서 법은 정치적 보복에 악용되는 수단일 수 없다.

 15세 이상 성인 인구의 ¼에 해당하는 1천100만 명이 전과자 신세인 우리나라는 이미 거대한 형벌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밝혀진 범죄만 처벌하는 것만으로도 검찰과 사법부의 권력은 막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구태를 못 벗고 권력에 빌붙어 필요에 따라 온갖 구실을 만들어 각종 별건 수사로 범죄자를 양산하고 있고 피의자 망신 주기와 모욕 주기에 주저함이 없는 곳이 현재의 대한민국 검찰이다.

 법치는 물론 사법부의 독립과도 직결된다. 국가가 사법을 독점하는 이유는 재판에 판사의 개인적인 이념이나 이해(利害)를 비롯해 정치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다. 즉 국가나 사법 조직의 이성이 온전하게 작동하게 함으로써 개인적 징벌을 배제하고 인간의 구체적 약점에 깃들 수밖에 없는 감성적, 정치적, 인격적 착시와 오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법과 함께 판결에 적용되는 양심이란 자신의 신조나 신념에 따른 개인적 양심이 아니라 법적 양심이다. 그래서 재판정은 피고인을 훈계하는 곳이 아니며 법관은 자신의 판결이 과연 진실에 근거한 것인지 끝까지 고민하고 회의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조선시대 대간으로 불렸던 각각 오늘날의 검찰과 언론에 해당하는 사헌부와 사간원은 선비 정신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곳이었다. 선비는 시류에 편승하거나 임금의 뜻에 영합했던 당시의 속유(俗儒)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계층이었다. 조선은 제도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왕조였다. 그래서 500년 집권이 가능했다. 국왕과 대신과 대간의 3권 분립 체계는 선비 정신으로 무장한 대간으로 하여금 대신뿐만 아니라 국왕에 대한 탄핵과 간쟁을 가능하게 했다. 정치와 이념에 휘둘리는 지금의 검찰이나 사법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선비들에게 정치는 정의의 길이었다. 신분제 사회에서 지배층으로서 정치적·경제적 특권을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목숨을 걸고 불의한 현실에 정면으로 맞섰다. 따라서 각종 사화로 인한 가혹한 시련은 그들이 가고자 했던 정의의 길에 대한 정치적 형극이었다. 자연법과 보편법 정신을 도외시한 채 실정법을 잘 찾아 꿰맞추기 식 판결을 일삼는 법 기술자가 득실대는 작금의 사법부와 권력에 편승하고 출세 지향적인 그동안의 검찰로 법치가 살기는 어렵다. 법치주의를 위해 신뢰를 강조했던 한비자의 주장이 새삼스럽지 않을 뿐이다.


기호일보, KIHOILBO

전체선택후 복사하여 주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