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
 조문영 / 21세기북스 / 1만9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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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빈곤의 인류학’ 수업에서는 특별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복지수급자, 홈리스, 철거민, 장애인, 영세 상인, 노점상,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 해 온 반(反)빈곤 활동가 10인을 선정해 학생들이 활동가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청년, 빈곤을 인터뷰하다’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열 개 팀으로 나뉜 학생들이 조문영 교수와 동행해 활동가들을 인터뷰한 것으로, 조 교수가 학생들의 결과물을 엮어 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은 또 반빈곤 활동가 10인이 공생과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고투하는 현장을 생생히 그려 낸 리포트이기도 하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빈곤사회연대’, ‘논골신용협동조합’, ‘난곡사랑의집’, ‘홈리스행동’, ‘노들장애인야학’ 등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를 대안적 연대의 방식으로 풀어 나가고 있는 활동가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빈곤에 대한 논의가 재조명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90년대 이후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과거 가난한 사람들을 대책 없이 쫓아내고 강제로 시설에 가두던 일은 줄어들긴 했다. 주거권·이동권·복지권·수급권 등 법과 정책이 일부 제도화됐으며 기초생활보장 맞춤형 급여, 탈시설 장애인 지원, 청년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매입임대주택 등 활동가들이 다양한 정책 변화에 대응해 문서를 학습하고 행정을 둘러싼 갑론을박에 참여하는 일도 잦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다수의 사상자를 낸 용산참사에서 보듯 국가 폭력도 현재 진행형이다.

 ‘자립’ 논의가 이 책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이 책은 빈곤정책을 관통하는 자립 프레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동시에 자립의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한다.

 책을 읽다 보면 결국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마주할 것이다. 삶을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일로만 볼 수 있을까. ‘밥’은 있지만 ‘나’는 없고, 주어진 ‘일과’는 있지만 ‘일상’이 없다면 그것은 과연 인간다운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삶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소통하려 하고, 이들을 위해 목소리는 내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게 된 우리가 서로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할수록 ‘우리’의 범주는 달라지고 관계는 새롭게 맺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
몽돌 / 빌리버튼 / 1만3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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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자주적(自主的)’으로 산다는 말이 어색하다. 그만큼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다. 다양한 집단 속 무수히 많은 관계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100% 말하지 못한다. 타인에게 비춰지는 내 모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의 저자도 우리와 마찬가지였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을 놓치고 살았다.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고, 부당한 일을 겪어도 참고 넘어가야 했다. 이런 고민들이 켜켜이 쌓였을 때 그는 절을 찾았다. 스님과 차담을 하면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화가 나는데도 평판을 신경 쓰느라 화를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불만을 쌓아 놓아 스스로 성격을 망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스님은 ‘그렇게 남 눈치를 보고 살아서 얼마나 잘 살았느냐’고 물었다. 스님의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끈질긴 위통처럼 괴롭기만 했던 참고 살았던 시간들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문태준 / 마음의숲 /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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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라는 세월은 무언가가 새로이 변화하거나 혹은 더욱 깊어지기 좋은 시간이다. 문태준 시인은 변하기보단 더 깊어지는 쪽을 택했다. 시인의 마음밭에 천천히 자라난 내밀한 언어들을 세심히 보살펴 키워 낸 글들을 묶은 이번 산문집에는 깊게 영근 시인의 시선과 언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문태준의 글에는 ‘단도직입’이 없다. 이는 직선보다는 곡선을, 모나지 않은 둥근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품고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우직한 삶이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산문집 곳곳에는 시인이 남긴 여백들로 가득하다. 섣불리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도, 독자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하지도 않는다. 굳게 닫은 철문이 아닌 느슨히 열어 둔 옛집의 사립문처럼, 각 꼭지의 글들은 저마다의 결론을 내린 채 닫혀 있는 것이 아닌 그저 가만히 열려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이 여백 가득한 한 권의 책을 읽어 가는 동안 자연스레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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