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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림 칼럼니스트
수년 전 중국을 방문한 서양학자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시진핑은 중국의 굴기는 평화롭게 일어서는 것(和平屈起)이므로 다른 국가들, 특히 미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투키디데스가 그의 저서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서, 신흥강국인 아테네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스파르타가 이를 제압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설명에서 나온 말이다. 이런 ‘함정의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하버드대의 그레이엄 엘리슨 교수는 「예정된 전쟁(Destined War, 2017),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저서에서 미국과 중국은 이 함정에 빠져 원하지 않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상 패권국들은 자국이 구축한 세계정치·경제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군사력 우위의 국가안보, 막강한 경제와 금융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제재와 금융제재 등의 국가 책략을 사용해왔다. 20세기에 패권국이 된 미국은 2차 대전 종전 이후 브레턴우즈협정을 기반으로 자유무역의 세계 경제 질서와 개방된 국제금융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국제관계법을 제정했으며,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융패권을 확보했다.

 한편, 21세기에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중국은 자국의 국부를 가져다 준 미국과 서구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더욱이 시진핑 집권 후 ‘중국몽’이란 기치 아래 ‘일대일로’의 세력확장, 남중국해의 불법적 인공섬 군사기지화에 의한 ‘자유항행 위협’, 10대 차세대산업 주도를 위한 ‘중국제조 2025’ 계획 등 패권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뿐 아니라 해외 투자기업으로부터 지적 재산권 탈취와 기술이전을 강요하는 반면, 자국 기업에는 정부 보조금 지급 등의 불공정무역 관행을 자행해왔다. 이러한 불공정거래를 바로잡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는 작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산 수입제품 총 2천500억 달러에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했고, 나머지 3천 억 달러에 해당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도 미국은 부과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이에 중국도 지난해에 미국산 대두 수입물량에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맞대응을 했다. 향후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미국을 위협할 중국의 전략적 무기는, 미국산 대두 수입금지, 희토류의 대미수출 금지와 중국이 보유한 3조 달러 상당액 중 1조1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의 대량매각과 나머지 보유 외환의 유로화 투자로 위협일 것이나, 그 영향력은 미국 시장에서 크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흔히 무역전쟁에서 지는 쪽은 상호의존도가 상대국보다 높은 국가이다. 지난해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4천200억 달러 규모의 무역수지 흑자를 보였기 때문에, 당연히 중국이 불리한 입장이 된다. 또한, 관세부과는 중국에 투자한 외국 제조업들의 탈중국 현상을 재촉해 국제분업에 의한 세계 제조업 공급망의 재편성 현상으로 대량의 실업자를 중국은 초래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국가 간판 통신설비 기업이며, 차세대 5G 선두주자인 화웨이는 5월 15일 미국 상무부로부터 기업 수출제한 리스트(Entity List)에 오르게 됐다. 그 이유는 이란에 금지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제재 위반에 대한 조사에 화웨이가 사법 방해죄를 감행했고, 사이버 간첩 행위 등 미국 국가안보와 대외정책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화웨이는 미국 기업으로부터 소프트웨어, 칩, 특수 레이저 등의 부품을 미국 정부 허가 없이 구매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구글도 안드로이드 운영 시스템을 포함 자사 제품 공급을 제한했고, 지난해부터 미국연방 정부 기관은 화웨이 통신 설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이뿐 아니라 미국 정부는 우방과 동맹국에 대 화웨이 부품 공급과 화웨이 통신설비 사용을 금하도록 제안하고 있으므로, 세계는 곧 화웨이 사용 국가와 사용하지 않는 국가로 나눠지는 기술 패권의 디지털 장막이 쳐질 것이다. 미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알리바바와 같이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상장폐지법안을 발의하고 있어, 이 법안이 통과되면 향후 중국 기업들의 미국 자본조달시장 접근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과 패권전쟁을 지속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의 마지막은 어떠할까? 미국의 고위 정책 입안자들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미국의 국가안보와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것과 싸우는 문명전쟁이 될 것이다. 이는 곧 자유민주주의와 공산당 일당독재의 전체주의와 체제싸움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들 두 국가가 모든 나라에 어느 편에 설 것인지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문명의 편에 설 것인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나 ‘1984’와 같은 반문명 진영에 서야 할 것인지의 물음 앞에서 지도자의 혜안과 결기가 요구된다. 이념보다 국가 생존의 사활이 걸린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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