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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2019년 07월 10일(수) 제10면
우승오 기자 bison88@kihoilbo.co.kr

부럽거나 궁금하면 진다지만 애시당초 이길 의사가 없으니 몇몇에게 물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특히 페이스북-에서 특정인의 그렇고 그런 글에 허구한 날 ‘좋아요’를 남발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음 자체가 주제넘고 오지랖 넓은 ‘짓’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정말 궁금해서 조심스레 의문부호를 달았다. 달리 말하자면 정말 그 글에 공감해서 하는 행위냐는 따짐인 셈이다.

돌아오는 답변은 각양각색이다. 어떤 이는 내용과 무관하게 지인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습관적으로’ 누른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전체 글의 일부분만 보고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기자가 아는 한 해당 글의 결론을 봤다면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이다.) 또 다른 이는 공감 여부와는 상관없이 ‘네 글 봤어요’의 의미로 그냥 누른다고도 했다. 혹자는 ‘품앗이’라고도 했다.

현재 페이스북은 6가지 방법으로 공감을 표시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좋아요’, ‘최고예요’, ‘웃겨요’, ‘멋져요’, ‘슬퍼요’, ‘화나요’가 표현 방식이다. 물론 댓글은 보너스다.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6가지 공감 표현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대상이 아니라 내용이 대상이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글에 ‘화나요’를 눌렀다고 해서 ‘당신을 증오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신이 처한 상황이나, 당신이 알리고자 하는 내용에 화가 난다는 공감인 것이다. 물론 일부는 하도 허무맹랑하고 어이가 없는 내용이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공감의 표현’이라는 당초 설계 목적과는 달리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기자도 그런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우는 어디까지나 자신만 아는 ‘편법 용도변경’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방은 ‘그’의 의도와는 별개로 공감의 표시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어차피 주제넘은 일을 주제로 삼았으니 일관성이라도 유지해야겠다. 해서 감히 주장한다. 공감하지 않으면서 어쭙잖게 공감을 표시하지 마라. 공감하지 않는 데 공감한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아니거니와 상대방을 기만하는 일이라는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 공감할 때만 공감을 한껏 표현하라. ‘보너스’도 덤으로 챙겨라. ‘좋아요’가 절대로 ‘봤어요’가 될 수 없는 연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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