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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삼복더위가 시작되는 초복에도 다양한 공연과 전시회는 지역 공공기관과 미술관 등지에서 열리고 있다. 예전에 비해 전시회들이 많아졌을 뿐 아니라, 전시관들은 전담 큐레이터를 두고 수준 높은 전시물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을 관람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은 즐거움 이상의 기쁨이라 할 수 있다. 늘 해오던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던 ‘관성적 존재’의 일상에서 ‘낯섦’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 낯섦이 섬광처럼 번득일 때, 타성에 젖어 있던 삶은 시(詩)가 된다. 그 낯섦의 광휘를 발견하게 하는 것은 작가의 치열한 ‘에피파니(epiphany:顯現:현현) 정신의 소산일 것이다. 낯선 에피파니를 찾아내기 위해 작가는 사물과 공간과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그것은 작가가 진부해진 언어를 버리고, 사물을 낯설게 관조할 때 가능하다.

 그러한 결과물을 관람하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가슴에 받아들이는 행위다.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면서도 주관적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다. 독자의 주관적, 감정적 오류가 문제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것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예술품을 감상하며 향유한다는 일은 이 세상의 ‘상징적 질서’(라캉의 말)를 받아들이며, 낯선 곳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 낯선 세계는 보는 사람마다 조금 다른 곳일 수 있다. 낯섦의 향유는 개인과 사회의 노력과 환경이 수반돼야 한다. 수준 높은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악을 먼저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알고 있는 만큼 예술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 그린 구두를 보고, 철학자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기원’에서 자신의 예술에 관한 깊은 사유를 펼친다. 하이데거는 독일 남부에서 평생을 살았고 외국을 드나든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가 살았던 농촌 경험을 바탕으로, 저 구두는 농촌 여성의 고단한 하루가 묻어 있는 구두라고 자신의 시(詩)적인 랩소디를 그림에 덧붙인다. 낡고 일그러진 구두의 모습에 농촌의 힘든 삶이 잘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고흐의 입장에서 그 그림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자신의 관점에서 그림을 평하고 있다고 미국의 미술 철학자 마이어 샤피로는 불만을 토로한다.

 샤피로는 어린 시절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유태계 출신이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 있으면서 잠시 나치에 협력한 바 있다고 비판 받는 하이데거에게 반감이 있어서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샤피로는 하이데거의 눈빛에 동의하지 않는다. 고흐의 구두는 농촌여성의 구두가 아니라, 고흐 자신의 구두일 수 있으며, 자신처럼 도시의 삶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야 했던 사람의 구두라고 말한다.

 여기에 유태계 프랑스 해체주의 철학자 쟈크 데리다는 고흐의 구두 그림에 대해, 위 두 사람과 다른 견해를 밝힌다. 사물의 관계 속에서 그림을 파악해야지 저것은 무슨 구두라고 규정 짓는 일은 위험하다는 입장을 밝힌다. 해체주의자 입장에서 기존의 구두에 대한 관념을 버리고 어렵고 사변적인 눈빛으로 그림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위 세 사람의 철학자를 예로 들었지만, 여러 사람들의 견해가 그 그림에 첨부돼 독일 퀼른의 발라프 미술관에서 2008년 전시회가 열렸다. 그림만 예술품으로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믿을 만한 관람객의 눈빛도 전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술에 다양한 견해를 밝히는 일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전시관을 찾는 일에서 시작된다.

 지난주, 용인의 아담한 ‘한국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이정주의 ‘생활, 패션을 입다’ 기획전을 다녀왔다. 작가는 ‘곡두문양’이라는 전통무늬를 생활 패션으로,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생활용품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일상을 예술의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장인의 손길은 스물 한 번이나 맞이하는 전시회 곳곳에 배어 있다. 민화 속에서 탈주한 나비들은, 나비 채집광이었던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어깨 위에 앉아 나에게 다가오라고 날갯짓하고 있었다. 철학자들이 고흐의 그림을 다양하게 읽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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