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공포영화’라는 등식은 유년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한여름밤, 선풍기 몇 대로 온 가족이 버텨야 하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린 채 한 많은 귀신들이 나오는 ‘전설의 고향’을 오들오들 떨면서 보곤 했다. 그 시절 가장 무서웠던 영화는 주말의 명화에서 방영한 ‘엑소시스트’였다. 우리 말로 퇴마사라는 제목처럼 구마 사제가 소녀의 몸속에 깃든 악마와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었는데, 무엇보다도 360도 돌아가는 소녀의 목이나 벌레처럼 천장을 기어가는 장면 등은 소름 끼치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귀신이나 악령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소재로 한 오컬트 장르는 1970년대 공포 장르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다 1980∼90년대에는 미치광이 살인자가 주인공인 ‘13일의 금요일’과 같은 피가 튀는 슬래셔 무비가 대세를 이뤘다. 그렇게 대중에게서 멀어진 듯 보였던 오컬트 장르는 최근 우리 영화 ‘검은 사제들(2015)’, ‘곡성(2016)’, ‘사바하(2019)’를 통해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사자’ 또한 신개념 오컬트 무비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가톨릭을 모태 신앙으로 갖고 태어난 용후는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뒤 신앙도 잃게 된다. 종합격투기 선수로 성장한 그는 최근 악몽과 함께 원인을 알 수 없는 상처에 시달렸다. 아물지 않는 상처와 악몽을 견디다 못해 찾아간 무당집에선 한 성당을 지목한다. 반신반의 끝에 성당을 찾은 용후는 그곳에서 구마 의식 중인 안 신부를 만난다. 악마가 깃든 부마자는 가공할 만한 힘으로 안 신부를 공격하고, 이를 보다 못한 용후는 주특기인 격투로 부마자와 대결한다. 그러던 중 용후는 자신의 다친 손바닥에 악령을 퇴치할 특별한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티칸에서 파견된 안 신부는 마치 아버지처럼 용후를 따뜻하게 대하지만 용후의 마음에는 종교에 대한 응어리가 깊다. 반면 검은 주교가 세력을 확산하는 가운데 이를 안 신부 혼자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이제 남은 건 용후의 선택뿐이다. 선을 택할 것인가, 모른 채 눈 감을 것인가!

영화 ‘사자’는 개봉 2주째에 접어들고 있는 신작 영화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공포영화다. 악령과 종교를 소재로 한 오컬트 영화인 ‘사자’의 특이사항은 슈퍼 히어로와 종합격투기 액션이라는 세 장르의 이종교배에 있다. 초자연적인 파워를 가진 부마자를 압도하기 위해 격투기 선수를 퇴마사로 내세운 설정은 상당히 신선하다.

이로써 기존 오컬트 영화가 보여 주지 못한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펼쳐질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 또한 마블식 영웅이 가진 초능력을 탑재한 주인공의 설정도 흥미롭다. 다만, 재미있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감이 있다.

그러나 영화 ‘사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만한 작품이다. 우선 배우의 힘이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난 배우 안성기의 안정적인 연기는 영화 ‘사자’의 단단한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긴장과 이완의 모든 순간이 안 신부를 중심으로 빚어진다. 박서준과 우도환의 연기도 매끄럽다. 두 번째는 오컬트, 히어로, 액션이라는 이색적인 장르의 결합이 볼만하다. ‘사자’의 후속작이 구상 중인 만큼 다음 영화에서는 가능성이 터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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