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jpg
"2016년에 클라우드, 구글 앱을 활용한 ‘스마트 업무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융·복합시대를 맞아 수평적·자율적 사고로 성장한 구글을 벤치마킹하고 싶습니다."

자동차부품 업체 유신정밀공업㈜에서 경영기획팀 부장을 맡고 있는 안경희(60·여) 씨의 바람이다. 이는 유신정밀공업이 추구하고자 하는 미래 목표이기도 하다.

안 부장은 요즘 흔히 말하는 아날로그세대다. 나이로 봐서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디지털세대에 가깝다. 안 부장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요즘 핫 이슈로 등장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 등이 거침없이 나온다.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스마트 공장 등 그의 뇌는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기자는 최근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한 커피숍에서 안 부장을 만났다. 그를 처음 본 순간 평범한 주부 같았다. 자녀들을 다 키운 또래 여성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여상’ 출신의 60대 여성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안 부장이 맡고 있는 일은 다양하다. 우선 회사에서 전사적(全社的)인 사업계획을 짠다. 성과관리와 투자 검토 등의 일도 한다. 지금은 사내 성장이나 매출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로스(loss·손실)를 개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안 부장은 보기 드물게 ‘유리 천장(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뚫고 올라간 인물이다.

그는 갓 스물에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40년 넘게 자동차 관련 업종에서 한 우물을 팠다. 그 비결은 남들보다 더 큰 열정과 끊임 없는 배움, 그리고 신념이었다.

안 부장은 1958년 서울 도화동(옛 마포동)에서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카투사 출신의 아버지와 마포 나루터 선주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그는 어린시절을 남부럽지 않게 보냈다.

그것도 잠시였다. ‘정직’을 평생 신념으로 여기던 아버지가 미8군에서 예편한 뒤 퇴직금으로 벽돌 공장을 차렸다. 안 부장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시절이다. 그는 이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가정이 궁핍해 진 시기로 머릿속에 잔상이 남아서다.

안 부장은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건축업에서 고지식한 아버지는 사업 역량이 없는 탓에 점점 가세가 기울었다"고 회상한다. 아버지가 살림살이를 팔아 직원들의 월급을 주다 보니 결국 초등학교 4학년 때 할머니 집에 얹혀 살게 됐다고 한다. 점점 가세가 기울면서 어머니도 하던 과일가게를 그만두고 형광등 공장에 취직했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8살 터울 남동생을 옆에 두고 기저귀를 갈며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부모에 대한 원망은 없었지만 교사의 꿈을 포기하고 서울여상에 입학할 때는 많이 울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2차 면접까지 보고 난 뒤에야 대학을 단념했다. 안 부장은 1977년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부품 전문업체 대광다이캐스트공업㈜에 공채 2기로 입사했다고 한다. 그는 대광다이캐스트에서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 등 각종 자동차부품을 만들며 전 부서를 거쳤다.

학업에 대한 미련을 도저히 버릴 수 없다고 한다. 그는 40이 되던 해에 장안대학교 일본어학과에 늦깎이 입학을 했다. 안 부장은 졸업할 때까지 그야말로 ‘코피가 터지도록’ 공부했다고 한다. 회사에서는 오후 4시에 학교에 가라고 해서 1년 내내 연차를 반납하고 집과 도서관, 학교와 교회만 다녔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왕 언니’ 라는 말까지 들으며 피나는 노력을 해 4.5점 만점에 4.3점으로 졸업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 부장은 첫 직장 근무시절 ‘여기가 내 평생 직장’이라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다고 한다. 안 부장의 바람과 달리, 대광다이캐스트는 2008년 1월 융통어음을 막지 못해 결국 부도가 났다.

안 부장은 당시 기획실에 근무했다. 그는 회사가 부도가 난 이후 현대·기아·대우 등 고객사 임원단과 비상경영위원회를 발족했다. 노조와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오로지 회사를 살려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의 노력도 허사가 되고 말았다. 회사는 부도가 난 뒤 2008년 10월 말 문을 닫았다.

이때 안 부장은 기업은 인체처럼 내장기관과 혈액순환, 호흡과 소화까지 모두 조화를 이뤄야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눈물 어린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유신정밀 송경식 부회장이 그를 눈여겨 본 것이다. 송 부회장은 그를 곧바로 채용했다. 31년 동안 한 회사에서 꾸준히 근무한 성실함을 인정받은 것이다.

안 부장은 새로 만들어진 경영혁신팀에 입사했다. 인천으로 일터를 옮긴 그는 경영혁신팀에서 원가시스템을 1년 반 만에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이외에도 기획과 전산, 공장 관리체계를 정비하고 회사의 비전을 세우는 일에도 집중했다.

‘원년 멤버’가 아닌데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과 저항도 적지 않았다. 오너 가족 정도는 돼야 들어갈 수 있는 경영혁신실에서 그는 그저 말없이 일만 했다.

10년 전 300명 남짓 하던 유신정밀은 올해 국내와 해외 법인까지 합쳐 2천100명이 근무하는 등 연 매출 4천억 원을 바라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의 성장에는 안 부장의 숨은 노력도 한몫했다.

5-1.jpg
안 부장은 일에 몰두하다 보니 미혼으로 속절없이 세월만 흘러갔다고 한다. 부모님의 투병생활 때문에 그에게는 시련도 많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안 부장은 봉사활동을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 연수구 선학동 평화의집을 정기적으로 찾아 지체·정신장애인들을 돕고 있다. 안 부장의 남다른 봉사활동에 회사 직원들도 월급 우수리를 모아 6년째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안 부장은 올해 정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인생 이모작’을 준비 중이다. 회사를 그만 둔 뒤 일본에서 선교사 활동을 할 생각이다. 30대부터 교회에서 선생님을 맡아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신감도 충만하다. 그는 학교폭력 상담사와 노인·가족심리 상담사, 영어성경 홈스쿨 교사 자격증까지 땄다고 한다.

안 부장은 올해부터는 잠도 충분히 자고 싶다고 한다. 색소폰도 배우고 싶어서 중고 알토색소폰을 샀다. 이 모든 바람은 회사를 그만 둔 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안 부장은 전한다.

그는 "‘호박이 수박이 되고 싶다고 제 몸에 줄을 그을 필요는 없다’는 말처럼 꼭 뛰어난 재능이 없어도 자기 개성을 살려 성실하게 살면 된다"며 "힘들고 어려운 분들을 돕는 ‘인생 2부’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덕현 기자 kdh@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