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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쌓인 옷가지들만큼 수십년 쌓아올린 추억 한아름

동구 중앙시장 점포 ‘라인’

2019년 05월 31일(금) 제14면
최유탁 기자 cyt@kihoilbo.co.kr


▲ 호인권 대표가 의류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60여 년의 전통이라고는 하나 변화의 바람은 우리 역시 막을 수 없는 노릇이야. 중앙시장 점포 대부분은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지. 그런데 조만간 우리 가게 인근이 도시재생을 한다네. 오래된 가게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섭섭하지만 이 역시 변화의 바람이라 수긍해야 하지 않겠나."

 그 옛날 인천의 중심지였던 동인천역 일대. 인천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삼치골목, 동인천역 북광장, 수문통, 화평동 냉면골목 등 다양한 맛집과 볼거리가 있는 공간이다. 지금도 옛 향수에 젖을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양키시장’이라고 불리는 중앙시장이다. 이곳에 노포(老鋪, 오래된 가게)가 있다. 한국전쟁으로 피란 나와 동인천역 인근에서 노점상을 하다 중앙시장에 터를 잡은 의류 도소매가게 ‘라인(대표 호인권·이숙자)’이다. 연세가 지긋한 중년 남자가 의자에 앉아 손님들을 맞이한다. 그가 바로 라인의 2대 경영주 호인권(67)사장이다. 호 사장은 아내 이숙자 씨와 함께 창업주인 어머니 박원현 사장의 업을 물려받았다.


 라인은 보세의류점으로 1955년 개업했다. 황해도 연백 출신의 창업주 박원현 사장이 한국전쟁 중 피란 내려와 인천에 정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전쟁 직후 박원현 사장은 먹고살기 위해 커다란 보자기에 옷가지를 한 가득 담아 중앙시장 앞 좌판을 깔고 장사를 시작했다. 노점상을 하다 늦은 시간이 되면 인근 가게에 보자기를 부탁하고는 퇴근했다. 그러하기를 1년여. 시누이의 추천으로 중앙시장 안 점포를 얻어 장사를 하게 됐다.

 중앙시장에서 장사할 당시 상호는 ‘라인’이 아니었다. 지금도 중앙시장 안 가게들을 보면 대부분 사장의 고향 이름을 따서 ‘개성사’, ‘충청사’ 등으로 지었다. ‘라인’ 역시 고향이 황해도인 창업주의 뜻에 따라 ‘황해사’로 시작했다. 1997년 지금 위치로 이전하면서 세련된 상호명을 찾던 중 왠지 옷가게에 어울릴 듯한 ‘라인’으로 간판을 바꿨다.

▲ 동구 중앙시장에 위치한 ‘라인’ 전경.
 틈틈이 가게에 새참을 나르던 며느리 이숙자 사장이 2대 경영자로 연로한 창업주의 뒤를 이었다. 이 사장은 결혼 후 허드렛일부터 시작하다가 1980년부터 가게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1대 박원현 사장이 운영할 당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품을 주로 판매했지만 이 사장은 보세의류를 팔고 있다. 새벽 첫차로 간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떼다가 팔면 동구 인근 공장 노동자들이 작업복과 담요 등을 두루 사 가곤 했다. 지금은 남편인 호인권 사장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동대문시장에서 물건을 사오는 일은 호 사장의 몫이다. 장사가 한창 잘 될 때는 일주일에 4~5회 동대문시장을 다녀왔다. 하지만 지금은 손님이 많이 줄어 10일에 한 번꼴로 서울을 찾는다.

 장사가 늘 잘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먹고살 정도는 됐다. 가장 호황이었던 시기는 IMF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즈음이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값싼 보세의류는 인기가 높다. 당시 만석동·화수동 등지 공장 노동자들이 단골손님이었다. 브랜드를 따지는 학생들도 비록 ‘짝퉁’이지만 나름 각자의 멋을 내기 위해 라인을 찾곤 했다.

▲ 상품을 정리하고 있는 호 대표.
 호인권·이숙자 부부가 박원현 사장에게 물려받은 것은 가게만이 아니었다. 물건을 볼 줄 아는 눈썰미와 손님을 끄는 장사기법을 내려받았다. 이들 부부는 지금도 옷을 고를 때면 한 번 더 생각하고 고민해서 가게에 진열한다고 한다. 취재 차 라인에서 만난 호 사장은 의류업 사장답게 맵시가 있는 자신만의 옷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나이에 맞지 않은 옷차림일 수 있지만 자신만의 멋을 옷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한국전쟁 때 어머니가 피란 와 먹고살기 위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것 모두 바닥에 깔고 팔았어. 그러다가 조금 나아져서 타일을 나무로 만들어서 좌판을 깔고 팔았지. 그리고는 1977년도인가 이렇게 가게를 짓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이것저것 다 팔다가 좀 지나 질긴 미제 청바지들을 팔았지. 그땐 청바지 훔쳐 오는 사람들도 많았어." 호 사장은 잠시 그 옛날 어머니의 세월을 회상했다.

 "아마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 시절 교복 자율화가 됐지. 돈 없는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다양한 짝퉁 옷을 사 입으면서 우리 장사도 서서히 물이 오르기 시작했고, 또 잠시 주춤하다가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또다시 장사가 엄청 잘 됐었어. 그때는 인천뿐 아니라 안양 등지 경기도와 강화도 사람들이 옷을 사 가곤 했지. 한창 바쁠 때는 점심 챙길 시간도 없어서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지."

 호 사장은 시장표 명품 의류 장사의 애환을 들려줬다.

 "우리 가게는 처음에 미제 담배, 화장품 등을 팔다가 전두환 대통령 때 의류업으로 바꾼 뒤 휠라·헤드·빈폴 등 유명 상표가 붙은 옷들을 팔고 있지. 트레이닝복도 있어. 아마 없는 상표가 없을 것이고, 사이즈별로 다 있어. 물론 정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민들이나 돈 없는 학생들이 많아 찾았어. 알지? 돈은 없지만 유명 상품을 좋아했던 학생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손님이 많으면 계속 하겠지만 지금 우리처럼 하는 가게는 몇 군데 안 남았어. 새롭게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잖아. 다른 것도 다 그렇지 뭐. 옛날처럼 집 전화기 누가 쓰냐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거야. 이제는 어쩔 수 없는거야."

 이런 호 사장의 예견은 적중했다. 중앙시장 일부 구역이 도시재생으로 사라질 처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인천시는 지난 3월 동인천 역세권 복합개발사업 및 원도심 재생사업 활성화를 위한 기본협약을 체결했다. 동인천의 역사·문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이 지역을 상업과 문화, 주거가 공존하는 역세권 중심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호인권 사장은 "어머니의 삶이 가득한 이 가게가 곧 없어져 다른 모습으로 변하겠지만 내 기억에는 어머니와 이곳에서 함께 했던 수십 년간의 세월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내가 살아왔던 역사가 있듯이 이제는 또 다른 세대가 또 다른 역사를 써 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최유탁 기자 cyt@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인천도시역사관 자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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