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섬기는 사람을 가엽게 여겨라. 그들은 고생만 죽도록 하고 아무에게도 존경받지 못한다."(괴테)이 세상의 극악무도한 일들은 국가나 국민의 이름으로 또는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자신의 이름에 피를 묻히지 않고 명예까지 탈취하는 것이다.그러나 그러한 명예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역사는 계속됐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군중은 정치인의 가면극에 환호한다. 순한 양과 정의의 탈을 쓴 가면극을 현실로 착각한다. 자신의 운명이 달린 문제임을 깨닫지 못한다. 본 모습을 겨우 깨닫게 될 때는 그 나라가 이미 피폐해진 후다.정
양심은 신이 인간의 마음에 심어 놓은 선의 뿌리다. 끊임없이 실천의 물을 주며 가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차 고사한다.자본주의가 비정상적으로 진행되면 양심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기도 한다. 상당히 헐값으로. 인간에게서 양심을 빼면 가치가 얼마나 될까. 요즈음 양심을 팔아버린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사람들은 모두 양심을 가졌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동일하지는 않다. 어떠한 사람은 양심에 따라 하는 행위가 부도덕하거나 심지어 범죄행위인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비난만 해서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 양심이 병든 것이다. 양심이 사람에 따라
오랜 기간 리더들을 바라보면서 느낀 점은, 인간은 그다지 선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에게 지나친 권력과 부와 명예가 집중되는 제도를 유지하는 한 인간의 선하지 못한 면이 언제라도 표출될 위험을 내포한다. 인간이 선한 존재라는 전제 하에 마련된 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권력과 부와 명예의 부패를 한탄할 게 아니라 이들을 철저히 분산하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에 힘써야 한다. 더구나 거대한 권력이나 부나 명예가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리더는 능력뿐 아니라 인격이 겸비돼야 한다. 인간의 모든 언행은
등산을 하다가 까마득한 낭떠러지 밑을 바라보면서 문득 자유가 아주 가깝다는 엉뚱한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현실 도피일 수도 있지만 본향에 대한 무의식적 향수일 수도 있을 것이다.술, 마약, 게임은 현실 도피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정 시간 현실에서 동떨어진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이 장기화되면 육체와 영혼은 피폐화된다. 영혼이 육체와는 다른 세계에서 장시간 머물기 때문이다. 인생의 고뇌에서 도피할 것이 아니라 극복할 일이다.우리 눈에 미래가 훤히 보인다면 오늘 분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늘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미래
인간이 흥분하는 상황이 되면 분노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고 한다. 이 호르몬은 ‘생존’을 위해 위험한 대상과 싸우거나 도망가도록 몸 상태를 바꾸게 한다. 순식간에 지킬 박사가 하이드로 변하는 셈이다.일단 하이드가 되면 악마와 같은 행위를 피하지 못한다. 지킬 박사는 스스로 약물을 복용해 하이드가 되지만, 흥분하면 육체 자체에서 분비된다. 흥분하는 경우, 그 상황이 생존을 위해 육체를 짐승과 같이 변화시켜 상대를 물어뜯을 일인가 자문할 일이다. 흥분하면 이성이 작동을 멈춘다.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많다. 흥분
이 세상에는 심성이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대부분 선과 악 사이에 분포됐다고 할 수 있다.문제는 그러한 심성은 거의 선천적이라는 점이다. 환경 영향도 있겠지만 미미한 듯하다. 더구나 생활환경도 부모와 관련해 거의 주어진 조건이다.이러한 면에서 보면 결국 선악은 거의 신에 의해 부여됐다고 할 수 있다. 인간 각자가 자신의 심성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의미에서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했다는 자유의지도 공허하다. 이런 상황에서 심성이 선한 자는 추앙하고 악한 자는 미워하는 것이 정당한가. 사람의 육체는 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사도 바울)이 세 가지 말은 구분된 듯해도 실제로는 모두 관련됐다고 할 수 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항상 기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지만, 아직 실천은 하지 못했다.광대한 우주, 파란 하늘과 온누리에 충만한 물과 공기에 감사한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해 주는 가족과 친지와 이웃들과 친구들이 있음을 감사한다. 한없이 부족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감사한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이
아름다움은 잠시 인생의 갖가지 고뇌를 잊게 해 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생무상에 대한 신의 배려일 수도 있다.매일 여명과 저녁노을을 바라본다. 계절마다 피는 꽃, 드넓은 대양과 파도 소리 그리고 무생물과 생물의 외부적인 형태와 미시적인 아름다움은 예술의 극치다. 그 이상의 예술을 원하는 것은 욕심이다. 인간의 예술은 너무 단순하고 피상적이다.인간의 심성이나 인격에도 아름다움이 깃들었다. 동물들의 눈망울에서도 문득 아름다운 영혼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어린아이들의 마음과 얼굴은 꽃처럼 예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상태가 지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면 국제 질서를 좌우한 것은 궁극적으로는 힘이다. 현재와 미래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힘이 없으면 국가는 결국 사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 질서의 냉혹한 현실이다.국제 질서는 정의보다는 힘 또는 힘의 견제와 균형에 의해 유지됐다. 정의는 힘의 결집에 조금 도움이 될 뿐이다. 힘이 없는 나라는 아무리 정의를 앞세워도 다른 나라들의 도움을 받거나 힘을 결집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냉혹한 국제 질서에 있어서 정의의 한계다.혹자는 정의를 내세우며 국제적인 힘의 논리를 공박한다. 그러나 정치인은 위와 같은 국제 질
"태양은 이 세상을 어둠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헤밍웨이)사람들의 모습이 다르듯 생각도 각기 다르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들을 잘 규합해 최고의 공동선을 모색하는 제도가 민주주의다. 이를 위해 다양한 생각들은 악의가 없는 한 모두 존중돼야 한다.다양한 의견을 토대로 합리적 의견을 도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각자 의견은 타인에게 쉽게 이해되기는 어렵다. 복잡한 사고체계에서 도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자 의견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거나 설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이러한 절차를 거쳐도 의견 통일이 안 되면 다수결 원칙에 따를
인간의 재산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해도 끝없는 갈증을 느낀다. 이는 지독한 가난이고 빈곤이다. 이러한 면에서 지구상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빈곤하다."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공자)자본주의 사회는 이익에 몰두한다. 그러나 너무 이익에 치우치면 의리와 이익을 모두 잃는다. 공존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재산은 처음부터 자신 소유가 아니고 잠시 보관하는 것이다. 한 푼도 하늘나라로 가져갈 수는 없다. 자신의 수중에 들어온 것을 당연하게 자신 소유라고 생각함으로써 불행이 가중된
누구나 평화를 원한다. 그러나 뉴스를 보면 온 세상이 하루도 평화로운 날이 없다. 대자연은 평화롭게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늘상 살벌한 생존 투쟁의 장이 펼쳐진다.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도 동일하다. 평화는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다.생존경쟁이 격화하면 누구도 평화로울 수 없다. 따라서 평화를 위해 경쟁의 기본 원칙이 필요하다. 경쟁자는 기본 원칙을 지키며 생존경쟁을 해야 하고, 이러한 원칙을 지키면서 취득한 전리품은 국가권력으로 보호해 준다는 게 원칙의 기본 골격이다.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법률을 제정해 경쟁의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이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많은 부분을 타고난다. 결코 평등하지 않다. 지능, 성격, 모습, 부모의 부, 환경 등등. 이러한 것들은 신에게 부여받았다. 여기에 자신의 노력이 보태지지 않으면 오로지 신의 도움으로 사는 것과 같다.그런데 실상 노력하는 능력도 신에게 부여받은 것이 아닌가.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쩌면 슬픈 억지인지도 모른다. 결국 노력하는 능력도 평등하지 않다.신조차도 인간을 완전히 평등하도록 창조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완전히 평등한 세상은 상정하기도 어렵지만, 그러한 세상에 사는 것이 행복하지도 않을 테다.완전히 평등한 세
살아오면서 켜켜이 껴입은 옷들이 점점 불편해진다. 인생은 너무 가식적이다. 노자가 공자의 ‘예’를 비판한 심정이 이해된다. 뱀이 옷을 벗듯이 하나하나 벗어 던지고 싶다. 어린 시절의 배내옷이 나올 때까지.인간은 사회적 새장에 너무 길들여져 창공으로 비상할 능력을 상실한 것은 아닌가. 심지어 새장이 열려 있어도 날아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인간의 개성이 너무 상실된 것이 아닌가.집착은 자유를 위축시킨다. 다른 길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며, 탈출구를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다른 판단을 일체 거부하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정직 때문이니, 굽은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은 요행으로 화를 벗어나는 것이다." (공자)이러한 강한 믿음이 사회를 평화롭고 정의롭게 한다. 이러한 믿음이 유지 강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성인들의 과제다.우리의 사회와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인간의 실체를 직시할 때 요행으로 화를 면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인류는 이미 멸망했을 것이다. 정직하게만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인간을 존속시키기 위한 신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신은 요행이라는 노아의 방주를 보내 그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아닐까. 그나마 개선의 여
진리나 정의도 감정에 실어 던지면 비난이 된다. 은총이 저주로 변하는 것이다. 비난을 비판으로 받아들이며 반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반대 상황이 대부분이다. 비판을 함에도 아주 신중할 일이다. 비판의 목적은 개선이므로.비난을 받을 때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이나 오만을 고치기 위한 신의 채찍이라 생각하며 감사하자. 타인의 비난에 임해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오만하거나 포용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최소한 비난하는 사람의 눈에는 비난할 점이 보이는 것이다. 비록 타인의 비난이 오해나 질투의 소산이란 결론에 이른다 하더라도 처음부
"과거에 살면 우울하고, 미래에 살면 불안하며, 현재에 살면 편안하다." (노자)미래를 향해 걷되, 오늘 하루 걸어야 할 거리를 최선을 다해 걷는 것에 만족하는 삶이 바람직하다.행복은 만족한 상태에서 온다. 원하는 것이 많으면 만족할 수 없고 행복할 수도 없다. 풍족한 나라보다는 어려운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원하는 것이 적고 만족하는 사람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오늘에 만족하고 아쉬움이나 원망이 없다면 행복한 상태다. 총명하지 않은 사람이 더 행복한 듯하다. 총명하면 상대적으로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무엇엔가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친다. 산과 들에 생명이 약동한다. 뭇 생물들의 환희의 합창이다. 나도 자연의 일원이기에 합창에 동참한다. 인간도 대자연에서 진화했다. 그런데 인간은 점차 생명의 뿌리인 자연에서 이탈해 고독하고 불안한 삶을 산다.눈을 감고 가만히 빗소리를 들으면 혼탁한 영혼이 정화된다. 너무 혼탁해 아주 오래 들어야 한다.비가 많이 내린다. 인간의 영혼이 상당히 혼탁한 모양이다. 사회가 제시하는 행복을 정신없이 쫓다가 진정한 행복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자연, 즉 신의 창조물을 바라보며 항상 감탄한다. 인간의 첨단 과학에 의해서
셰익스피어는 진실한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평온하다고 했다.진실을 외면한 사람의 마음은 항상 불안하다. 진실이 항상 그 사람의 눈을 빤히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과 자신의 양심의 눈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두려운가.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잘못 창조된 사람이라 할 수 있다.허위는 진실의 가면을 쓴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점차 가면이 교묘해진다. 창조력이 놀랄 정도다. 그러한 능력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면 될 터인데, 개과천선이나 방향 전환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
요양원에 다녀왔다. 한없이 심란하다. 어느 때가 돼야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누구와 대화를 하고 온 것인가. 그토록 총명하고 강건하던 정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 자식과 손자들에 대한 사랑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돌아오는 길에 구슬피 우는 어린아이를 봤다. 넘어져서 우는 거란다. 부러웠다. 언제 저렇게 소리 내어 울었던가.인생을 너무 깊숙이 들여다보면 우울해진다. 비관론자는 인생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는 자다. 평생 이러한 생각을 되뇌이며 이를 초탈하려 노력했지만 실천이 너무 어렵다. 인생길은 너무 험난하다.인간은 인생의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