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확(的確)한 비유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안을 이미 익숙한 사물을 들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다. 2017년 외유 중이었던 충북 김학철 전 의원이 국민을 들쥐라고 표현해 한동안 물의를 일으켰고, 이후 조국 전 장관이 본인은 딸을 의대에 부정 입학시키면서 국민들을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로 비유해 더욱 공분을 일으킨 일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선택한 비유가 국민에 대한 본인의 인식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국민을 위한다는 그들을 그토록 오만하게 만들었을까.들쥐는 더럽고 병을 옮기는, 도저히 가
최근 국내 경제연구단체들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1%대에서 2%대로 낮은 전망치를 내놓았다. 이를 두고 정부나 각 언론은 경제 진단과 대응 방안에 대해 갑론을박하나, 경제전문가들의 우려는 국내 어두운 경제상황에 비춰 이웃 일본처럼 자칫 L자형 장기 저성장 터널에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데 모아진다.저성장을 피할 수 없다면 막연한 불안감보다는 코로나 사태처럼 극복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게 옳은 길이다.저성장이란 용어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한다. 저성장은 글자 그대로 국민 생산량(GNP) 감소로 인해 실업이 증가하고 가계소득이 주는 현상
최근 산업계 이슈는 챗GPT를 출시한 OpenAI 글로벌의 창업자 샘 알트먼의 축출 그리고 5일 만에 그가 재집권한 드라마였다.이 일로 소위 AI 윤리를 내세웠던 OpenAI 글로벌이 어떤 제동장치 없이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게 됐다. 그래서 IT업계는 AI 개발이 무분별하게 자행되리라 우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기술이 과연 몇 IT 구루들에 의해 통제되고 운용되는 게 옳은가 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의문은 이렇게도 중요한 기술 개발이 기술권력을 가진 소수에게 맡겨져야만 하는지, 아니면 기존 기술처럼 사회나 시장 기
최근 국내 수출기업들이 당면한 과제 중 하나는 유럽이 2030년에 맞춰 모든 기업에 요구하는 환경, 사회기여 그리고 지배구조의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이다. 여기에 따르면 공급망 체인에 포함되는 기업들 모두가 해당하기 때문에 직접 수출을 하지 않더라도 수출기업에 납품한다면 준비해야만 한다.하나 이에 못지않게 ESG 경영에 대한 반대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ESG 공시 시기가 너무 촉박하거나 관리지표의 모호성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과연 필요한 일인가 하는 목소리가 적지
폭력이란 힘 있는 자에게는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쉽게 쓸 수 있는 수단인 반면 힘없는 자에게는 자신의 처지를 주위에 알리기 위해 쓸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지금 진행 중인 중동의 이팔(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예로 들면 전자가 이스라엘이고 후자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다.이들을 선악으로 구분하기보다는 먼저 배경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양쪽 처지를 이해하고, 또한 우리에 비춰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이팔전쟁은 멀게는 모세의 이집트 디아스포라까지 올라가지만, 명백한 점은 1차 대전 시 팔레스타인 땅을 놓고 독일
"과학자는 윤리적이어야만 하는가?" 이 질문은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안고 있는 숙제이자 최근 개봉영화 오펜하이머의 화두이다. 오펜하이머는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원폭)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이자 물리학자였다. 그의 일대기가 출판되고 영화화된 것은, 학자와 행정가로서도 훌륭하지만 가공할 위력의 원폭 개발이 갖는 윤리적 측면을 고민했다는 사실, 그리고 당시 가혹한 정치적 희생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당시 오펜하이머가 명예와 권위를 잃게 된 것은 그의 부인의 지적처럼 부족한 정치력 때문이었다. 만약 원폭의 위
지난달 무사히(?) 끝마친 새만금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는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이미 많은 부분이 언론에 나온 만큼 굳이 장황한 상황 설명은 필요치 않을 듯싶다. 그보다는 이번 사태를 우리가 한데 뭉쳐 극복했다는 뿌듯함 대신 3천억 원의 천문학적 세금을 끌어다 쓴 국제 행사가 왜 이렇게 엉망이 됐는지, 그리고 그것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음에 이런 인재를 피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행사는 새만금 간척지 개발을 목적으로 기획한 국제 행사다. 개발 주최인 전북도로서는 일회성에 끝나는 행사를 빙
"전쟁은 정치의 한 수단이다." 「전쟁론」의 저자 프로이센 장군 클라우제비츠의 말이다. 이를 풀어 쓰면 국제 정치, 즉 외교에는 선악(善惡)이 아니라 각각의 입장(立場)이 있고, 그 입장이 갖는 실리(實利)에 따라 전쟁 혹은 동맹을 선택하게 된다는 뜻이다. 영원한 동맹이나 적국이란 있을 수 없고, 상황에 따른 실리만이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전략을 가장 잘 구사하는 국가가 일본이지 싶다. 1차 대전에는 당시 패권국이었던 영국과 함께 독일과 싸워 승전국이 됐지만, 2차 대전에는 미국과 영국의 연합국과 대항하기 위해 독일과 동맹을 맺었
지난달 서울 서이초등학교 여교사 자살이나 연이어 일어난 초등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은 곪아 터진 우리 교육계의 참담한 현실과 암담한 국가 미래를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으로 정치권은 원인으로 지목된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대한 공방을 이어갔고, 교사들은 생존권 투쟁을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최근에는 유명 웹툰 작가의 교사 고소 사건(7월 27일) 그리고 세종시 교육사무관의 교사 갑질 사건(8월 11일)으로 더욱 확대되는 듯하다. 물론 당장 조례를 개정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사람은 없을 테다. 오히려 잠시 이
최근 역사평론가이자 유튜버인 박종인 씨가 일부 유튜버들이 하는 잘못된 방송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는 내용을 연이어 올렸다. 대중매체인 유튜브를 이용해 일부 국사 관련 학원 강사가 입시생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을 상대로 엄청난 바람몰이를 하는데, 문제는 이들 강의가 인기를 얻으려고 왜곡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다.이는 반드시 돈 때문이 아니라 어떤 때는 무지해서 그렇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를 갖고 그렇게 한다. 이들 중에는 이른바 일타 강사 A씨를 비롯해 B·C·D씨가 있다.A씨는 학위 논문 표절과 지나친 자기 주장으로 중앙 매체
2020년 시작된 코로나 사태가 2022년 3월부터 방역패스 중단 조치와 같이 단계적으로 완화되다가 2023년 5월 11일 코로나 엔데믹 선언으로 병원을 제외하고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공식적으로 3년 만에 코로나 공포가 없어진 셈이다. 아쉬운 일은 2020년과 같이 코로나가 한창 극성일 때 다방면에 걸쳐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연구와 저술이 봇물을 이뤘다가 정작 끝난 지금에는 이렇다 할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외관적인 현상, 즉 외국 여행객이 급격히 늘었다는 것 그리고 배달음식이 크게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자의 임무는 주위 사회현상을 관찰해 분석하고 설명하되, 가능하면 처방을 내리는 일이다. 그런 작업을 논문으로 혹은 일반 대중에게 강연이나 칼럼과 같은 글쓰기 도구로 표출한다. 필자 역시 기호일보 지면을 빌려 격주로 칼럼을 실었고, 그 기간이 2019년부터 5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러한 칼럼 수가 100회를 넘어가는 순간, 그제까지 파편화됐던 칼럼에 대해 한번 매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칼럼들을 정리하면서 역사가들이 그러하듯이 한발 뒤에 서서 과거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역사란 사건(e
우리는 많은 운동가를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혁명가로 불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역사를 봐도 몇 번의 혁명적 시도는 있었으나 성공까지는 이르지 못했는데, 한 가지 이유로 쉽게 조선 500년간 우리 정신세계를 옥죄었던 주자학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혁명가에 의해 발전돼 왔다면 우리는 그 긴 기간 혁명가 부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프 구드윈 교수는 혁명(Revolution)은 "대중의 폭력으로 권력을 몰아내고 정치 경제 등 제 방면에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따르면 프랑스혁명을 이
최근 한 사이비 종교집단 교주의 성추문 폭로 뉴스가 모든 언론 매체에 도배됐다. 1987년 32명을 집단 자살로 몰고 간 오대양 사건도 그랬지만, 이들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공통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점은 교주의 지시가 잘못됐음을 알고도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복종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부당한 권위에 대한 복종 현상은 크게는 정부조직부터 기업, 크고 작은 사회모임 그리고 작게는 가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에서 알게 모르게 일어난다. 지시를 받고 한 폐기물 방류도 그렇고, 서류 불법 조작도 그러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요즘은 언론 미디어나 간단한 대화에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챗GPT(Generalized Pre-trained Transformer)가 일색이다. 불과 얼마전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겨서 난리가 나자 이것이 블록체인 열풍으로 이어지더니 올해는 이 신기한 AI 기술이 차지한 셈이다. 어찌나 광풍인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가 크게 오른 반면 경쟁 기업인 구글은 거의 10% 이상 떨어져 버렸다. 그렇다면 이 기술을 어떻게 봐야 할까? 챗GPT는 간단히 말해 지능형 검색엔진으로서 인간의 뇌세포를 본떠 만든 AI엔진(Transformer)에
역사에 대한 서술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는 서술가 관점에 따라, 그리고 시대 상황에 따라, 달리 기술되기 마련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충신이었으나 때가 바뀌어 역적으로 몰리는 사례는 수없이 많으나 유독 우리 피부에 와 닿은 인물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일 테다. 더구나 그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 시대를 여는 초대 통수권자였기에 자칫 잘못된 평가가 그 이후의 인물 평가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후대의 역사 인식에도 큰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대체로 인물 평가는 기준을 세워 있는 그대로 과오를 나누고 진행
약 10년 전 구글을 소개한 동영상의 마지막 장면에 ‘구글 국가(google government)’라는 비전 제시를 담았다. 당시 구글은 세계적인 인터넷 검색 기업으로서 엄청난 성장을 하던 차였다. 이를 보고 숨이 멎는 듯했다. 구글이 국가를 넘어 어쩌면 구글 제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제국이란 다른 민족을 통치·통제하는 정치체계다. 고대 로마제국과 신성로마제국 그리고 몽골제국에 이어 최근에는 조금 의미는 다르지만 패권국 미국을 제국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인터넷 세상의 한 특징으로는 사업과 서비스가 공간과 시간을 초
최근 중앙지에 국내 인터넷 포털인 네이버에 대한 성토성 광고가 연이어 실렸는가 하면, ‘독과점 플랫폼 혁신’이라는 주제로 몇몇 정치인들과 함께 같은 취지의 토론회를 열었다. 사실 이들의 주장이 일반인들로서는 낯선 사안이지만 조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사회로나 정치로나 섬찟한 일이 아닐 도리가 없다. 그래서 이들 이슈가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주지하다시피 네이버는 인터넷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독점 플랫폼 기업이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의 예로 포털서비스로는 구글이 있고 쇼핑몰로는 아마
매년 새해가 되면 누구나 한 해에 대 한 희망을 갖곤 한다. 지난해의 어려웠던 점을 상기하고 새로운 기회를 이용해 이를 극복하고자 다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난히 올해는 전문가의 전망이나 쏟아지는 뉴스 어디에도 실낱같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막연히 기대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지난 일을 되짚어 보고 어렴풋하게나마 우리 갈 길을 정하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항시 이럴 때는 주변부터 살펴보는 게 순서다.지난해를 결정짓는 화두가 갈등과 분열이었다면 올해 희망의 언어는 응당 화합과 번영이어야 한다. 그러한 희망과는 달리
최근 들어 국내 정치는 막장드라마로 치닫고, 우리 서민과 밀접한 경제는 그야말로 폭풍직전이다. 이처럼 나라가 혼란할수록, 가는 길이 안보일 수록 절실한 것은 길을 밝혀 줄 어른의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어른들이 언젠가부터 우리 주위에서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사회 어른이라고 여기던 김동길 교수,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함석헌 선생들의 비보만 있을 뿐 어른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는지 또 그들을 불러낼 길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어른이란 공동체에 닥친 문제에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