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2022년 초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윤석열 후보의 선거공약 중 국민들 마음에 가장 어필한 구호는 "공정과 상식을 증진시키겠다"였다. 이 공약을 두고 많은 국민들은 "실제로 할 수 있을까?"라며 의구심을 품었다. 왜냐하면 제5공화국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걸었던 구호가 ‘정의사회 구현’이었는데, 실제로는 그의 재임기간 ‘정의’가 증진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되는 것을 목도하면서 감쪽같이 속은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윤석열 후보가 ‘검사 출신’이기에 아마도 ‘공정과 상식’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수도 있겠다"라는 일말의 기대를 걸고 윤 후보에게 표를 던진 국민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국민들은 "또 속았다"며 개탄한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공정과 상식’이 증진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공정과 상식’에 위배된다고 보여지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검사 시절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제시하지 않아 검찰 수사를 좌절시킨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를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것을 들 수 있다. 

둘째, 주가 조작,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명품백 수수와 관련된 여러 의혹들에 대해 사과나 해명도 없고 수사·조사도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셋째, 해병대 사건과 관련해 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출국금지 상태에 있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해 출국토록 했다. 

넷째, 언론인에 대한 테러 협박성 발언을 내뱉은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파면하지 않고 단지 사의를 수용한 것이다. 

다섯째, 윤석열 대통령이 "대파 한 단 가격이 875원인 것은 합리적이다"라며 시장의 실거래 가격을 무시하듯 말한 것이다. 그밖에도 ‘공정과 상식’에 위배된다고 여겨지는 사례들이 여럿 있지만 더 열거하지는 않겠다.

국민들은 ‘검사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범죄 발생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렇지만 전세사기·금융사기 등 각종 범죄가 줄어들지 않고 횡행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실망감을 떨치지 못한다. 또 윤 대통령이 2023년 신년사에서 약속했던 3대 개혁(노동·교육·연금개혁)이 현재까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것도 실망을 준다. 말로는 매번 ‘법치주의’와 ‘자유’, ‘헌법정신’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법치주의 훼손(시행령 통치 등), 언론자유 제약(언론인에 대한 압수·수색 및 고소·고발 남용 등), 헌법정신 침해(법률안거부권과 사면권의 남용 등) 사례가 빈번하다고 비판받는 형국이 된 것도 아쉬움이 크다.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외교 분야에서 난맥상(굴욕적 대일 외교 등)을 보이는 데 대해서도 국민적 불만이 크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정부를 향해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며,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다. 내 편, 네 편을 갈라 대립·갈등을 조장하지 말고, 여론을 합리적으로 리드하고 존중하는 노력을 진지하게 펼쳐야 한다. 야당과도 타협·절충을 통한 협치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최근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이 "뒤돌아보니 손에 왕(王)자를 새긴 채 방송토론에 나왔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며 후회했다고 한다. 

이번 제22대 총선에서 또 ‘후회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모든 유권자들이 신중하게 투표해야 한다. 경상도·전라도, 강남·비강남, 세대·남녀·빈부를 따지지 말고 오직 ‘합리성’에 근거해 현명하게 이성적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와 우리 자손의 미래가 이번 투표권 행사 향방에 달렸다. ‘개인적 이득’만을 고려하는 이기적 태도를 버리고 ‘공동체의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투표해야 한다. ‘정치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 ‘정치인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냉소하면 안 된다. 선거는 국민 지성의 표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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