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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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났다. 결과는 더불어민주당과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그리고 선거 막판 돌풍을 일으킨 조국혁신당을 포함한 범야권의 대승이었다. 반면 국민의힘과 비례정당인 국민의미래를 포함한 여당은 고작 108석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극단적 여소야대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제 야권은 21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법안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 권한과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 권한을 얻었다. 소수 여당의 입법 반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당 역시 108석을 통해 개헌 저지는 물론이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역시 지킬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총선 결과에서 보여 준 국민의 표심은 너무도 절묘하다. 이는 곧 정부·여당에는 야당과 협치해 국정을 이끌어 갈 것을 요구하는 한편, 거대 야당에게는 일방적인 입법 독주를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늘 그렇듯 국민의 선택은 현명하면서도 냉정하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민심은 천심’이란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여야 모두 부적절한 후보를 공천해 문제가 되거나, 각종 막말과 기행으로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준 것은 뼈아픈 진실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저출산 대책’을,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민생’을 각 1호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이를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았다. 총선 내내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모욕이 대세를 이루면서 최악의 진흙탕 선거가 된 것이다.

결국 상당수 국민은 누가 더 좋은 후보인지 고심하는 것이 아닌, 흠 있는 후보군 속에서 ‘덜 나쁜 사람 내지 그나마 괜찮은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굳이 비교하자면, 다양한 종류의 맛집 속에서 어딜 가야 하나 행복한 고심 끝에 "왜 꼭 1곳만 가야 하는지 아쉽다"며 맛집 투어를 하는 것이 아닌, 맛이나 가성비도 떨어지고 위생과 서비스마저도 별로인 식당들 속에서 그저 배는 채워야 하기에 어디든 일단 들어가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됐다. 억지로 음식을 강매당하듯 선택을 강요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은 67%라는 높은 투표율에서 보듯 주권자의 책임을 다했다. 일부 불참한 국민 역시 작금의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를 ‘투표하지 않는 행위’로써 보여 준 것이지, 결코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무책임하다고 평가해선 안 된다. 더는 갈 식당도 없고, 가 봐야 먹을 음식도 없으며, 먹어 봐야 건강만 심각하게 해치기에 ‘이럴 거면 차라리 굶겠다’며 결연히 단식을 선택한 것과 같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하지만진보와 보수 양극단 속에서 정치권은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것이 곧 훈장이라도 된 양 자신의 진영 속에서 스타가 됐고, 출세의 지름길이 됐다. 옳은 말이 아닌 우리 편에 유리한 말을 해야 성공한다는 그릇된 필승법이 자리한 셈이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 기생해 각종 유언비어와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마치 영웅인 척 행세하는 유사 언론마저도 어느덧 정치판의 주요 플레이어로 활동하게 됐다. 여기에 온갖 혐오의 발원지로 정치권이 지목되는 현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정치 과잉의 시대 속에서 국민은 그 균형점을 맞춰 주며 위태위태한 정치권을 다독이지만 그로 인한 피로감이 상당하다. 선거 때면 항상 중도층 표심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좌와 우의 극한 대치 속에 중도는 그저 덜 최악을 선택하도록 강요당한 것이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덕성도, 능력도 후순위로 밀리는 작금의 정치판이 다시금 신뢰를 얻도록 정치권 스스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잔칫날 찾아왔던 사람들은 웬일인지 그리 기쁘지 않다. 오히려 잔치에 오려다 돌아간 사람에게 "당신 마음은 이해한다"며 위로하고픈 심정이다. 정치인이 존경받기 너무도 힘든 세상, 잔치는 끝났지만 아직 뒷정리가 남았다. 음식들과 접시, 널브러진 쓰레기를 치우는 건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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