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애 인천지방법원 조정위원
김미애 인천지방법원 조정위원

긴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 가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집 밖에 나오는 것도 어색해지지 않을 즈음 친구 A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1년 전 A의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조문을 다녀왔었는데, 지금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걸려온 휴대전화 너머 A의 목소리는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엄마가 아버님을 간병하다가 패혈증이 와서 중환자실 입원 후 섬망과 치매 증상이 악화돼 지금은 요양병원과 병원을 오가며 투병 중이시고, A는 이런 엄마를 돌보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수원지방법원에서 승계집행문이란 것이 왔는데, 아무래도 돌아가신 아버지에 관한 일인 듯하다고 했습니다.

서류를 우편으로 다 보내 달라고 해 살펴보니 돌아가신 A의 아버지를 상대로 B금융사(이후 B라 한다)가 대여금청구를 해 승소 판결을 받았는데, 그 후 A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B는 그 상속인들을 상대로 2023년 12월 1일자로 승계집행문부여를 받았고 그 서류가 상속인들 중 하나인 A에게 송달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우 A는 승계집행문부여에 대한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데, 주문은 ‘1. B와 망자 사이의 수원지방법원 대여금 사건에 대하여 같은 법원 법원사무관이 상속인들을 승계인으로 하여 부여한 승계집행문은 상속인들이 망자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를 넘는 부분에 한하여 이를 불허한다. 2. 위 집행력 있는 판결에 근거한 상속인들에 대한 강제집행은 상속인이 망자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를 넘는 부분에 한하여 이를 불허한다’라고 기재해야 합니다.

한편, A는 민법 제1019조에 따라 상속 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상속 포기든 한정승인이든 결정했어야 하기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바로 상속인 재산조회를 철저히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A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머니의 병환으로 정신이 없었고, 지금은 아버지가 사망해 상속이 개시된 시점부터 3개월이 지났으므로 단순승인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A는 단순승인 처리돼 빚을 포함해 일괄적으로 상속이 이뤄지기 전 만약 고인의 채무가 받을 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3개월을 지나 알았다면 특별한정승인을 신청해 구제받을 수 있는데, 이는 취득하게 될 재산한도 내에서 고인의 채무, 유증을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승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A는 본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해 채무 초과 사실을 3개월 내 알지 못한 게 아님을 입증해야 합니다. 중대한 과실이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음에도 게을리해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A는 특별한정승인을 신청하고, 더불어 또 다른 상속인 어머니에 대한 성년후견도 함께 신청해야 했습니다. 고인의 상속인 중 한 명인 A의 어머니는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므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고, A는 그런 어머니의 소송행위를 대리하기 위해 성년후견인이 돼야 했습니다.

위 사안에서 A는 아버지의 사망 당시 아버지 재산 여부를 파악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방광염과 당뇨, 고혈압이 있는 상태에서 2022년부터는 허리 염증 수술 후 거동이 불가했는데, 어머니는 이를 간병하다 자신도 같은 해 10월께 패혈증이 와서 중환자실 입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아버지 사망 후 어머니 또한 병세가 악화됐고, 치매로 발전해 현재까지 요양병원과 병원을 오가며 투병 중이므로 A는 어머니를 간호하느라 아버지의 사망 후 고인의 채무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A는 고인의 채무 초과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모르고 있었고, 1년이나 지난 최근 B가 보내 온 승계집행문을 받은 이후 비로소 고인이 채무 초과 상태임을 알았으므로 어머니와 함께 특별한정승인을 신청했으며, 어머니가 정신능력 제약으로 소송행위를 할 수 없으므로 A는 어머니에 대한 후견인도 함께 신청한 상태입니다.

이렇듯 어머니에 대한 A의 성년후견과 특별한정승인이 결정되면 승계집행문부여 신청에 대한 이의는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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