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주 변호사
박노주 변호사

모든 경쟁에는 승패가 있기 마련이다. 운동경기, 전쟁, 정치, 재판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면에서 그러하다. 승패는 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다. 아니 인생지상사(人生之常事)다. 승패가 고정돼 있다면 패자는 삶을 지속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경쟁에 열광하고 광분하는 것은 승패가 있기 때문이며, 경쟁은 인생의 축소판이자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장이기도 하다. 인간의 본성을 은폐하며 억지로 고상한 가면을 걸치고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가. 모처럼 고상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흉측한 얼굴에 바람을 쐬는 것이 아닌가.

경쟁에서는 평소 가식적으로 깊이 숨겨 뒀던 인간의 날카로운 이빨과 손발톱이 모두 드러난다. 서로 물고 뜯는다. 아비규환(阿鼻叫喚)이다. 모두 광분하고 환희와 괴로움에 울부짖는다. 이러한 때 지킬 박사가 하이드로 돌변한다. 어쩌면 지킬 박사는 일종의 가면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한낱 짐승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경쟁의 태풍이 지나가면 승자는 굴러다니는 가면을 재빨리 걸치고 고상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가면을 쓸 생각도 하지 않고 흉측한 말을 쏟아내며 패자를 물어뜯기도 한다.

예전에 패자는 헤밍웨이의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는 말을 되뇌며 분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자성보다는 희생양을 찾아 피투성이가 된 동지까지 물어뜯기에 바쁜 사람들도 있다.

극렬한 전투가 지나간 폐허에서 그리 존경스럽지도 않은 사람들이 마치 현자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광경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물어뜯는 것이 낫다. 승자든 패자든 자신의 부족한 점에 관해 자성할 일이다.

우주를 바라보라. 세상은 끊임없이 돌고 돌며 빛과 어둠이 교차한다. 이것은 인생에 대한 커다란 교훈이고 신의 준엄한 경고이자 위로다. 모든 생명체가 이러한 신의 뜻을 깨달으면 한 차원 높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인생에 빛이 비추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오만해진다. 인생에 어둠이 깃들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좌절한다. 그래서 오늘도 세상은 돌고 돌며 빛과 어둠이 교차한다.

승자에게 패자의 심정을 헤아리는 아량이 없다면 승리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전쟁에는 승리했지만 실패한 전투도 있지 않는가.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은 국민도 있지 않는가. 전 국민의 대표라면 이러한 국민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패자에게 진심어린 승복이 없고 뼈저린 반성도 없다면 진정한 패배자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될 것이다. 실패한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해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패배가 계속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동일한 패배가 계속된다면 미래까지 너무 암울하지 않는가.

정치인에게는 개인이나 정당의 승패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유불리를 고려하는 경륜이 필요하다. 이러한 경륜이 부족한 사람이 국가를 이끌어 간다면 큰 불행이다. 세계적으로 그러한 정치인들이 많다. 그래서 세상에 어둠이 걷힐 줄을 모른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일들을 하지 않거나, 하지 않아야 할 일들을 한다면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오늘은 승자지만 미래의 패자다. 선거에 불리한 것을 알면서도 국가를 위해 일을 한다면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오늘의 패자지만 미래의 승자다. 선거라는 중차대한 문제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이성에 의한, 그리고 국가의 미래까지 고려한 냉철한 판단에 따라야 한다. 정치인의 내심의 의도를 간파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 평소 정치에 관심을 갖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승리는 패배를 예비하는 것이다. 패자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패자로 하여금 생사의 투쟁을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를 극복할 정도로 현명한 인간은 많지 않다. 그러기에 승패의 수레바퀴는 오늘도 돌고 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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